‘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를 읽고…
나는 이 작품을 영화로 먼저 접했다. 그리고 몇몇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책을 구해서 읽었는데 이렇게 두 가지 방법으로 모두 접하니 비로소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먼저 영화를 볼 때는, 부담이 없고 줄거리 이해가 쉽고 구체적인 시각적 장면을 제시해주어서 기억하기 쉬웠다. 그러나 세세한 부분은 놓치기가 쉽고 시각적 장면이 자유로운 상상을 방해할 수도 있다. 그런 부족한 부분을 책이 보충해 주는 것 같다. 비록 영화가 소설이 되거나 소설이 영화화 될 때, 각색된 부분이 차이가 나기도 하지만 큰 틀은 변하지 않으므로 이해하는데 어려움은 없으리라 본다. ‘죽은 시인의 사회’의 경우, 소설을 영화화한 경우인데, 소설의 큰 틀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원작에 없는 부분(문방구 날리기 등)을 첨가하고 미장셴을 깔끔하게 해서 완성도를 높인 것 같다. 그리고 원작보다 감동을 더욱 불러 일으킬만한 구성으로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는 가슴 뭉클한 감동을 준다. 원작보다 영화를 먼저 접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원작보다는 영화를 권하고 싶다.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는 1959년, 미국 동부의 웰튼 아카데미 고등학교에 키팅이라는 새 국어 선생님이 부임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이 웰튼 아카데미 고등학교는 사립 대학 진학 예비교로써 역사와 전통이 매우 깊고 우수한 졸업생들을 많이 배출한 이른바, ‘명문’ 고등학교이다. 명문 고등학교인 만큼, 학생들 또한 ‘귀한 집 도련님’들이다. 이 도련님들은 품위를 지키며, 너무도 어른스럽게 행동하고, 감정을 절제한다. 그리고 이 시대는 ‘비틀즈 혁명’이전으로써 학생들은 그들의 주장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없었다. 아버지나 선생님 등, 절대적인 권위를 지닌 기성세대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그 시대엔 자기주장을 내세우면 곧 ‘불량아’로 찍히기 마련이었다. 학생들은 그저 아버지가 짜놓은 인생 계획표대로 살아가야만 했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그러한 특수한 환경, 특수한 상황 속에서, 소년들이 한 사람의 이상적인 교사, 존 키팅을 만남으로써 처음으로 자의식을 갖고,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말, 자신의 시로 표현하는 기쁨에 눈 떠가는 성장의 이야기이다. 존 키팅은 학생들에게 스스로를 해방시킬 것을 요구한다. 숨막힐 것 같은 교칙, 아버지의 엄격한 교육, 주위의 과잉기대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를 찾아 ‘생의 정수’를 즐길 것을 당부하고 있다. 또 시를 머리로 이해하기보다는 가슴으로 느끼며 진정으로 음미하는 황홀함을 가르친다. 그리고 그 자신은 학생들을 그러한 자유에로의 항로로 항해하게 하는 선장임을 자처한다.
학생들은 이 정열적인 선생을 만남으로써 그 전에 느껴 보지 못한, 새로운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태어나서 처음 맛보는 황홀한 자유에 조금씩, 조금씩 접근해간다. 그러한 접근 과정에서 그들은 당황하고, 고민하고, 불안해한다. ‘죽은 시인의 사회’회원들은 밤에 학교를 나가 동굴에서 자기가 쓴, 자기의 주장이 들어간 자신의 시를 자기의 목소리로 낭송하고 음미한다. 그러면서 자기표현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반항은 꿈도 못 꾸던 우등생인 닐 페리가 아버지가 반대하는 연극을 하고, 찰리 달튼은 학교에 남녀공학을 하자는 글을 쓰고, 녹스 오버스트릿은 사랑을 고백한다.
그러나 그 시대는 그러한 자유를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너무나도 보수적 상황에서 키팅은 너무도 급진적인 자유를 내세웠다. 결국 학생들의 자유를 향한 열정은 학교라는 억압체제에 짓눌리고 만다. 아버지의 말을 어기고 연극을 한 닐 페리는 절망한 나머지 자살을 하고 키팅은 학교에서 쫓겨나고 나머지 학생들은 굴욕적인 서명을 강요받는다. 자유에 대한 열정이 강했던 만큼, 학교로의 전향은 굴욕적일 수밖에 없다.
영화에서 키팅을 배웅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는 눈물을 흘리지 아니 할 수가 없다. 누구보다도 여성스럽고 심약하던 토드 앤더슨이 용감하게 교장 선생님 앞에서 존 키팅 선생님을 배웅하기 위해 책상위로 올라서는 그 장면에는 사라져 가는 선장에 대한 아쉬움과 존경, 전향에 대한 사죄, 그리고 억압적인 체제에 대한 단호한 거부가 드러나 있다. 이러한 굳건한 모습에 우리는 감동 받을 수밖에 없다.
이 작품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은 토드 앤더슨이다. 토드는 입학할 때부터 그 학교 우수 졸업생인 형의 영향으로 너무도 큰 부담을 안고 있었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형 때문에 부모님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해서 심약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키팅 선생님을 만나, 시를 쓰고, 소리를 지르고, 책상에 오르고 하는 사이에 마지막 ‘죽은 시인들의 사회’모임에서는 멋진 시를 낭독을 할 정도로 적극적인 사람이 되어 있었다. 토드 앤더슨이야말로 키팅 선생님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고 성격 변화가 가장 심했기 때문에, 토드 앤더슨의 변화를 보면 키팅 선생님의 교육을 가장 잘 엿볼 수 있다.
그들의 자유에의 동경은, 특수한 환경, 특수한 시대를 뛰어 넘어, 일반성을 갖는다. 자유가 억압되는 곳은 어느 환경, 어느 시대에나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오늘날의 고등학생 이야기 일 수도 있다. 또, 바로 우리의 이야기 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카르페 디엠(오늘을 즐기라.), ‘생의 정수를 즐기라’ 는 키팅의 이야기는 결코 헛된 이야기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도 시를 가슴으로 음미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