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룩시장에 당첨된 김에 안 듣는 CD를 처분했다.

벼룩시장에 CD

특히 표절 음반들을 다 털고 싶었는데, 녹색지대는 팔리고, 주주클럽은 기증하고, 서태지는 아내가 듣겠단다.

역시나 요즘 CD 듣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별로 안 팔렸다.

난 안 듣지만 그래도 ‘명반’이라는 것들은 아까워서 남겨놓고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했다.

어쩌다 쇼핑 사이트에 들어간 게 실수였다.
한 번 터진 물꼬는 막을 수가 없더라. ㅋ
그동안 잘 참아왔지… ^^;;

김현철 Best
김현식 3집
Bobby Kim 2집
이문세 Best
이승열 1집
Complete Clapton
Cranberries Best
Sting & The police Best
서태지와 아이들 1~4집

사실 이제 다 지겨워서 슬슬 신선한 노래가 필요했어…ㅋ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요즘 한국 가요는 댄스 그룹 일색에 간간히 힙합이 끼어든 꼴로 보인다.
장르를 나누는 것을 좋아 하지는 않지만, 편의상 나눠봤을 때 락은 커녕 이젠 발라드도 보기 힘들다.
이 획일성은 음악 시장에 있어서 특정 집단의 구매력이 전체 구매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다른 사람들의 구매력은 미미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한국 가요의 다양성을 위해서, 음악시장이 한 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음악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음반을 구매했으면 좋겠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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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 우연히 음반 가게 앞에 떨이로 내논 음반을 뒤지고 말았다…

동물원 1,2집을 만나게 될 줄이야…

그밖에 기대할 만한 음반을 더 샀다.
자우림 5, 윤종신 10, 롤러코스터 3, 박정현 4, 봄여름가을겨울 Mystery.

음반을 뒤지다 명반을 헐값에 구입할 때의 희열이란!

2008년들어 작년에 사논 수 많은(ㅡ.ㅡ;) 음반 들을 듣느라 새로 음반을 안 사고 있다가,
무심코 옥션아닌 다른 사이트에 들어가보니 내가 호시탐탐 노리던 음반들이 널려있더라…
ㅇ_ㅇ
또 정신을 잃고 무료 배송될 때까지 질러버렸다. ㅠ.ㅠ;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림 1집,
Now 1집(옛 정이 든 음반인데 친구가 CD만 잃어버렸다.  ㅡ.ㅜ; 앞으로 대여는 없다.),
U & Me blue 2집,
Damien Rice,

아… 뜯기가 조심스러워.^ㅇ^
너무 좋아~!!!

한국 대중음악사 100대 명반(2007)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0708231025551 

과연 한국 대중 음악사를 진정으로 빛낸 뮤지션들은 누구이고, 음반들은 어떤것일까?

우리는 여태까지 ‘Rolling Stone 선정 100대 명반’, ‘VOX선정 올해의 음반 100선’ 등은 보아왔지만 국내 음악 매체에서 이러한 것을 심도있게 다룬 것을 본 기억은 없다. 국내 대중음악사에서는 명반으로 선정할만한 단 100 장의 음반도 없다는 것인지, 아니면 (선정 경위에 대한 비난을 감수하면서) 소신있게 음반을 선정할 만한 자신이 없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러한 관심조차 없다는 것인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이 연재의 마지막에서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음반들을 살펴보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다.

여태까지 Sub Special Text에서는 지극히 자의적인 기준의 평가방법으로 70년대 이후 뮤지션들을 정리하였고, 이는 기존에 형성된 뮤지션들에대한 평가도 많이 달랐다. 처음에는 ‘내가 뽑은 음반 100선’ 만을 하고 싶었으나 좀 더 객관적으로 자리매김을하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서브 기자들 뿐만아니라 외부 ‘음악 선정 위원들’로부터 음반 추천을 받는 방식을 택하였다.

그리고 현재 음악 산업계에 관계하는 다양한 직업군에서 어느 정도는 전문성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이 코너의 ‘음반 선정 위원’으로 위촉을 하였다. ‘음반 순위 매김’에 무슨 의미가 있냐고 반문할사람도 있겠지만, 이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 음반 선정 방법 >

1. 먼저 선정 위원들에게 100매 이내의 음반 선정을 위촉하였다.
2. 시대/장르는 불문하고, 한 뮤지션에 대해서 복수로 음반 선정을 가능하게 하였다.
3. 반드시 음반 선정시 순위를 매겨달라고 하였다.

< 순위 집계 방법 >

1. 21명에게서 가장 많이 선정된 음반에 먼저 순위를 매겼다.
2. 선정된 음반 횟수가 같으면 개인 순위의 합이 높을수록 상대적으로 높게 순위를 매겼다.
3. 다음 ‘100대 명반’ 순위 옆의 ( )안의 숫자는 선정 위원들에게 지목 받은 횟수를 의미한다.

전체 1위인 들국화 1집의 경우는 선정위원 전부에게서 선정이 되었다.

< 선정 위원(가나다 순임/총 21명 >

고희정(서울스튜디오 마스터링엔지니어), 곽택근(신나라 레코드 영업부대리) ,김기정(펌프), 김민규(서브기자), 김영대(나우누리 뮤즈), 김종휘(팬진공편집인, 인디음반 제작실장), 류상기(다음기획 제작/기획부장), 박민희(한겨레신문 문화부기자), 박상완(기독교방송 PD), 박준흠(서브 편집장), 신승렬(나우누리 뮤즈), 신현준(대중음악평론가), 유현숙(논픽션작가), 이창기(나무를 사랑하는사람들), 조경서(경기방송 PD), 조성희(서브기자), 조원희(카사브랑카,슈거케인), 진용주(우리교육기자), 최순식(하나뮤직 기획/홍보실장), 한유선(자유기고자), 황정(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

 

1. 들국화 1집 (1985/서라벌레코드) [전인권(v,g), 최성원(v, g, b, key), 조덕환(g, v), 허성욱(key)]

결코 짧지 않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한 장의 음반만을 고르라는 것은 무리다, 더구나 현실보다 과대포장되어 온 것이 과거이고 보면 그러한 거품을 걷어내고 결과물 자체를 냉정하게 응시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80년대 경제적 여유 속에 도사리고 있던 교묘한 통제에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저항하던 당시의 젊은이들에 대한 회상이 단지 통기타, 청바지 그리고 생맥주로 그쳐진다면, 그리고 80년대라는 시간의 개념을 넘어 의미를 갖는 명제가 한낮 운동권의 회상으로만 그친다면 그 시기 모습을 드러낸 4명의 젊은이들의 이 역사적인 첫 발디딤은 추억으로 남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4가지 독자적인 아이덴디티의 조합으로부터 파생된 들국화라는 록밴드가, 그리고 그들이 내지른 첫 번째 외침이 갖는 의미는 우리에게, 아니 적어도 대중음악에 있어서 적지 않은 것이었다. 호황 뒤로 얼굴을 숨긴 제도권의 입김으로 더 이상의 시도를 포기한 채 안이한 태도로 일관하던 가요계의 자신의 틀에만 안주하고자 하는 록과 모던 포크 등 대학 중심의 음악들이 위와 밑으로 나뉘어 더 이상 공유점을 찾지 못하고 방황할 때, 들국화가 던진 정사각형의 출사표는 긴 동면에 접어든 듯한 대중음악을 깨우게 된다. 들국화의 데뷔 앨범은 각자의 역량이 충분한 4명의 싱어 송 라이터들이 ‘음악이란 현장에서 자신의 힘으로 하는 것’ 이라는 어쩌면 당연한 명제를 이 땅의 음악인들과 청중들의 뇌리 속에 각인시킨 작품이었다.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의 전인권의 절규와 <매일 그대와>에서 보여준 최성원의 감성 어린 목소리, 허성욱의 절제된 건반,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에서 나타난 조덕환의 곡 쓰기 그리고 최구희, 주찬권, 이원재 등 당시 최고의 세션맨 등 이 모든 것들은 얼마나 이 음반이 철저한 싱어 송 라이터의 감각과 역량으로 라이브를 위한 라이브의 감성으로 만들어진 것인지를 가늠케 해준다. 이로써 한국의 대중음악계는 ‘밴드’라는 단위의 구성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과 함께 비로서 진정한 의미의 음악인들이 자라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하게 되었다. 그러나 들국화는 1집 이후 실망스러운 후속 작들과 잦은 멤버교체 등으로 호흡을 길게 갖지 못한 채 신화로 남게 되었고 대중음악사에서 이러한 시도들은 답보의 상태를 맞게 된다. 그 이후 철저한 상업논리에 의한 인기곡의 생산과 재생산은 특정 장르에 국한되었고 ‘노래 만들고 노래 하는’ 밴드들은 언더그라운드라는 별칭하에 지하로 가라 앉게 된다. ‘만일 들국화가 데뷔 앨범과 같은 에너지로 그 생명력을 키웠더라면 대중음악은 다양성과 독자성의 자양분을 충분히 흡수했을 텐데’라는 아쉬움을 갖고 표절과 시스템화되어 버린, 일방적인 한 장르의 득세로 다양성과 함께 그 항체를 잃고 점점 고사해가는 듯한 현 가요계를 바라볼 때 13년 전에 뿌린 이 씨앗에 대한 회한과 그리움은 더할 뿐이다. 아직 소멸하지 않은 13년 전의 그 씨앗들은 매스미디어와 자본에 지배되는 대중음악계의 변방에 자리하며 마로니에와 신촌, 홍대 근처의 지하에서 다시 제2의 들국화로 피어나기 위한 기회를 엿보고 있다. 즉, 이들이 바라는 바와 같이 자신의 색깔을 간직한 채 세상에 당당히 평가 받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들국화가 13년 전에 보여주었던, 대중음악사에 있어서 가장 소중했던 가능성이다. (황정)

2. 산울림 1집 (1977/서라벌레코드) [김창완(g, v), 김창훈(b, v), 김창익(d)]

작사, 작곡, 편곡, 연주 등 모든 면에서 진정 ‘뛰어나다’라는 감정서를 붙여도 손색이 없는 시대의 명작이다. 당시에는 들을수 없었던 최신 조류의 팝/록을 음악 들이 가요에 접목되어 선보여졌다는 것 하나만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뛰어난 음반이다. 이 앨범이 다른 록 명반들과 그 의미를 달리하는 것은 지극히 ‘음악적’인 면에서 훌륭했다는 점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사회참여적이지도 않았고, 가사에 과장된 시적 은유를 표현하려 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음악에 과장된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는 더더군다나 하지 않았다. 이들 형제들은 솔직하지만 간결하고 아름다운 노래말로 자신들의 순수한 음악적 열정을 가사로 표현하는 동시에 새로운 장르에 대한 탐구와 실험에 입각한 수준 높은 연주력을 한 장의 음반에 담아냈다. 이들에 대한 재평가가 늦어진 것은 그들의 음악에 숨겨진 음악적 역량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단순하고 유치한 듯한 노래말에 숨겨진 독특한 코드 전개와 연주 스타일은 언뜻 지나치기 쉽지만 분명 음악적으로는 높게 평가될 만한 것이었다. 선구자적인 측면으로나 음악적인 천재성으로나, 이를 능가하는 다른 앨범을 찾기 힘든 명반 중의 명반이다. (김영대)

3. 어떤날 1960~1965 (1986/서울음반) [조동익(b, key, pcc, v), 이병우(g, pcc, v)]

어떤날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전대미문의 듀오였다. 소박한 감수성으로 록과 포크 그리고 퓨전 재즈를 지향했던 그들은 번뜩이는 자신들의 천재적 재능을 과시하지 않으면서 조용하게 데뷔 음반을 완성했다. 음악적 출발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 조동익의 형이자 70년대 모던 포크의 독자적인 지류였던 조동진과 80년대 전문 세션을 개척한 포크 록 그룹 따로 또 같이의 영향이 느껴지기도 하지만(2집에서는 자신들이 좋아하는 팻 메시니의 영향이 드러난다), 같은 해에 실질적인 데뷔 음반을 발표한 시인과 촌장과 같이 완벽한 자신들의 스타일을 형성한 뮤지션들이다. 데뷔 전해인 1985년에 진정한 의미의 신인발굴 컴필레이션 음반인 <우리노래 전시회1>에 <너무 아쉬워하지 마>를, 들국화 데뷔 음반에 이병우의 <오후만 있던 일요일>을 수록함으로써 대중에게 자신들의 존재를 알린 그들은 80년대 중반 한국 대중음악의 르네상스기를 연 일군의 뮤지션들(따로 또 같이, 들국화, 시인과 촌장 등) 중에서 막내격 이었다. 비록 80년대에 노래했던 그들이지만 통시적인 감성으로 어느 시대의 여린 젊은 가슴일지라도 울릴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어떤날의 노래들은 부드러우면서도 전율적이다. 그리고 그 노래들은 바로 <하늘>, <그 날> 등이다. (박준흠)

4. 델리 스파이스 Deli Spice (1997/도레미레코드) [김민규(g, v), 윤준호(b, v), 이승기(key), 오인록(d)]

“반항이다! 아니다!”의 ‘뻣뻣한 록 담론’으로부터 도망하고 싶어하는 모든 모던 로커들의 고민대로 그들은 자신의 음악을 ‘그냥 팝’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자신들의 주장’은 어떻게 보면 아직 듣지 못한 이들에게 ‘선입견’을 만들어주는 위험한 행동이지만, 너무나도 이 앨범과 잘 어울리는 주장이다. 한국 대중음악의 이디엄으로부터 몇 광년 정도 떨어져 있는 그들의 음악관은 당연한 것이고, 또한 그러한 주장에 어울리는 트랙들을 선보이고 있는 점이 바로 그 증거물이 된다. 한국 대중음악사상 가장 중요한 트랙 중의 하나인 <챠우챠우>만으로도 이 앨범의 가치는 높이 평가될 수 있다. ‘연주력의 과시’도, ‘상업적인 안배에 의한 곡 구성’도 없는 이러한 앨범이 그렇게도 대중친화적인 용어인 ‘팝’과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일종의 ‘승리’다. ‘통신상의 공간’으로 부터 출발했다는 꼬리표를 항상 달고 다니는 그들이지만 앨범의 완성도는, 어쩌면 경멸적이거나 핸디캡일지도 모르는 그런 꼬리표를 어느 곳에 달아야 할지 궁금하게 만들어 버린다. (조원희)

5. 시인과 촌장 푸른 돛 (1986/서라벌레코드) [하덕규(v, g, har), 함춘호(g)]

여린 듯하지만 날카로운 비수를 폐부 깊숙이 감춘 시인과 촌장의 목소리는 들국화와는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감성을 표출한 80년대 젊음의 뒤틀린 희망가였다. 시인과 촌장은 조동진을 수장으로 하는 70년대 모던 포크의 맥과 닿아 있지만 하덕규 특유의 동화적 상상력 (손수 그린 파스텔화 앨범 재킷과 <얼음 무지개>같은 곡에서 잘 드러나는)과 세상에 대한 치열한 시각(<매>, <비둘기 안녕>), 그리고 함춘호의 전통적이지 않은 기타 플레이 등으로 일반적인 시각의 포크 듀오의 이미지에서 멀리 벗어나 있던 이들이었다(이 시절 누가 <고양이>와 같은 곡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이미 <푸른 돛> 이전에 <내 고향 동해바다>, <재회> (남궁옥분이 불렀던 그 곡) 등이 실린 앨범을 발표했던 하덕규는 함춘호와 짝을 이룬 이 앨범에서 ‘아무래도 친구 푸른돛을 올려야 할까봐 (<푸른 돛>)’ 라고 나즈막히 얘기하며 ‘제자리로 돌아오는 풍경(<풍경>)’을 희망했다. 따스한 감성의 <사랑일기>와 <우리노래 전시회 1>에 실렸던 <비둘기에게>가 주로 알려 졌지만 지독한 연가 <진달래>와 자아에 대한 이중적 태도가 담긴 <떠나가지 마 비둘기>, <비둘기 안영> 등의 여운은 당시의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존재감을 부여했다. (김민규)

6. 어떤날 2집 (1989/서울음반) [조동익(b, key, pcc, v), 이병우(g, key, v)]

들국화 데뷔 앨범의 한 켠을 차지했던 <오후만 있던 일요일>과 우리노래 전시회의 <너무 아쉬워하지 마>는 당시의 상식을 벗어난 구성의 곡이었다. 굳이 클라이막스를 강조하지 않는, 그 흔하던 ‘뽕’ 멜로디를 거세한 어떤날의 곡은 다분히 조동진의 영향력하에 놓인 가사 쓰기(국내에서 리리시즘을 이야기 한다면 이들을 빼놓을 수 없다)와 함께 당시 어느 누구도 실현하지 못했던 새로운 영역의 것이었다. 소박했던 1986년의 데뷔 앨범 이후 3년만에 발표된 이 앨범에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도입하여 보다 세련된, 그러나 여전히 도심 변두리 골목을 연상시키는 사운드의 곡들이 풍성하다. 조동익의 <초생달>, <하루>, <그런 날에는>과 이병우의 <출발>, <취중독백>, <11월 그 저녁에> 등이 동등하게 실려 있지만 이 둘의 곡은 미묘한 차이를(정서적으로나 곡 구성으로나) 보인다. 이 앨범을 마지막으로 조동익과 이병우는 나름의 길을 걸으며 솔로 뮤지션 세션, 프로듀서 등으로 활약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발표되었던 장필순 4집과 한영애 4집은 조동익과 이병우가 각각 프로듀서한 앨범으로, 이를 통해 이들의 변화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다. (김민규)

 

7. 유재하 1집 (1987/서울음반)

앨범 발표 직후 사고를 당해 단 한 장의 앨범이자 유고작이 된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는 천재 뮤지션을 잃었다는 깊은 아쉬움을 남긴 앨범이다. 그는 천상에 있지만 그가 남긴 흔적은 지금까지도 후배 뮤지션들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이는 유재하 추모앨범에 참여한 명단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지만 지금의 ‘발라드’ 진영의 발군의 주자들 모두는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한 유재하가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을 거친 후 (조용필 7집 당시 조용필과 흡사한 목소리로 백보컬을 넣던 이가 바로 유재하였다) 원 맨 밴드나 다름없는 세션으로 발표한 이 앨범은, 클래시컬한 구성이 제공하는 매력도 무시할 수 없지만 <가리워진 길>,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에서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맑은 정서가 주는 신선한 충격에 비할 바가 못된다. 베이스 라인과 피아노가 묘하게 엇갈리던 <우울한 편지>가 던져준 감동을 언제쯤 다시 만날 수 있을까?[이 앨범에 수록되지 않은 유재하의 곡으로는 <그대와 영원히>(이문세 3집, 문과철 1집), <비애>(한영애 2집)가 있다.] (김민규)

8. 봄 여름 가을 겨울 1집 (1988/서라벌레코드) [김종진(g, v), 전태관(d)]

봄·여름·가을·겨울의 등장은 우리 음악의 범위를 넓힌 쾌거이다. 이들은 연주 음악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고, 기교없이 기본을 지키는 연주가 오히려 더 어렵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진리를 깨우쳐주었으며, 보컬이 반드시 귀에 쏙 들어오는 목소리가 아니라도 좋은 멜로디와 진실한 가사만으로 사람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지금 그들이 처한 음악적 정체의 위기는 초기의 이 소박하고 욕심없는 자세를 유지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알루미늄 케이스와 동영상 CD로 포장된 6집의 호화 재킷보다 첫 앨범의 소박한 재킷이 더 정감어리고, 이현도나 김세황, 이주노, 김현철, 이소라 등이 참여한 6집보다 오직 이 둘이 만들어낸 1집의 곡들이 더 많이 애창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모든 스타 음악인들 에게는 처음 시작할 때의 기분으로 돌아가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 봐>라는 노래는 그들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것임을 그들은알까? (신승렬)

9. 이상은 공무도하가 (1995/폴리그램)

이상은은 현재 한국에서 가장 독특한 음악세계를 지닌 여성 아티스트다. 예전의 ‘가수’였던 그녀의 자격에 현재는 ‘음악감독’으로서의 자격이 훨씬 더 두드러 진다. 그러한 그녀의 변신은 5집 <언젠가는>에서부터 본격화되었으며, 결국 이 앨범에서 꽃을 피웠다. 한국 대중음악사상 유례없는 실험성을 간직했으며, 토속적인 동시에 유려한 가사들과 이제는 ‘자신만의 것’이 되어 버린 듯한 독특한 멜로디라인이 매우 훌륭한 앨범이다. 특히 <새>에서의 사운드 응용은 이상은을 ‘스타일리스트’로 규정할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대단한 음악감독’으로도 규정할 수 있게 한다. 그래도 누군가 이상은의 ‘전력’에 대해 물고 늘어진 다면 나는 그들에게 피치카토 파이브의 노미야 마키도 어린 시절 머리에 꽃핀을 꽃고 아무 생각 없는 댄스뮤직을 부르던 TV용 아이돌 스타의 일원이었으며, 여전사 커트니 러브조차 알렉스 콕스 감독의 기억에 따르면 ‘스타가 되는 것 외에는 다른 생각이 없는 드럭정키’였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 (조원희)

10. 한대수 멀고 먼-길 (1974/신세계레코드)

김민기가 한국 모던 포크의 신화라면 한대수는 개척자였다. 1968년 귀국하여 국내 음악활동을 시작한 이후 6년만에 내놓은 이 음반에는 그의 초기 대표곡들이 실려있다. <물 좀 주소!>에서 “물 좀 주소/물은 사랑이요”, <바람과 나>에서 “야! 자유의 바람/저 언덕 위로 물결같이 춤추는 임”, <행복의 나라>에서 “창문을 열어라/춤추는 산들바람을 한 번 더 느껴보자”를 외쳤던 그는 자유와 이상을 꿈꾸는 몽상가였다.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밥 딜런 정도의 위상을 획득 했을지도 모르지만 이 땅에서 그는 날개 꺾인 한 마리 날짐승이었다. 무한한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당시 단연 빛나는 존재였지만 활동의 제한을 받는 뮤지션 이었고, 어처구니없게도 이 데뷔 음반은 금지음반이 되었다. 정성조 쿼텟이 세션으로 참여하여 <바람과 나> 같은 곡에서는 당시 흔히 들을 수 없었던 새로운 느낌의 세션을 들려주고 있고, 나중에 해금되어 정식으로 재발매된 음반에는 <하루 아침>의 오리지널 버전이 실려 있다. (박준흠)

11. 작은거인 2집 (1981/오아시스) [김수철(v,g, g, b, key)]

단연 최초의 하드 록 명반이다. 초기 대학가요제 출신의 밴드로서는 활주로, 마그마와 함께 가장 뛰어난 재능을 과시했던 그는 1979년 <일곱색깔 무지개>, <내일>, <세월> 등이 담긴 데뷔 음반을 발표했고, 1집의 밴드 체제에서 원 맨 밴드 형식으로 변화하여 이 역사적인 음반을 녹음했다. 그는 신중현 이후의 기타 히어로였고, 대중앞에서는 엔터네이너를 자처했다. 하지만 당시 대중음악계의 판도와 전체적인 수준으로 볼 때 그는 너무 앞선 뮤지션이었고, 그래서 이 음반은 실험적인 앨범으로까지 비추어졌다. 이는 작은거인 1집 수준의 연주와 녹음이 주류였던 당시 우리 음악계의 역량과 90년대에 내놓았어도 전혀 부끄럽지 않았을 훌륭한 완성도를 가진 이 음반 사이에 존재하는 상당한 간극이 만들어낸 현실이었다. 여기에는 후반부를 블루지한 패턴으로 선회하는 하드 록 <새야>, 진정한 실험지향적 연주곡 <어둠 속에서>, 호쾌한 기타 플레이의 진수를 보여주는 <알면서도>, 1집에 비해 그의 음악적인 역량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단적으로 보여 주는 리메이크곡 <일곱색깔 무지개> 등 빛나는 트랙들이 실렸다. 이후에도 이런 질감으로 연주하는 뮤지션은 이 당시의 김수철 밖에는 없었다. (박준흠)

12. 부활 Rock Will Never Die (1986/서울음반) [김태원(g, v), 이지웅(g), 이승철(v), 김병찬(b), 황태순(d)]

가장 촌스러운 재킷 디자인상 1등으로 뽑힐 만한 이 앨범은 그러나 그 시절, 들국화의 첫 번째 앨범과 함께 록 음악을 80년대 주류로 당당히 자리매김한 걸작이다. 10년이 넘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부활을 지켜오고 있는 김태원의 출중한 기타와 곡 쓰기는 이승철의 다듬어지지 않아 더욱 매력적인 보컬과 만나 이 놀라운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정말로 아쉬운 것은 이 두 사람 모두 10년이 넘게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며 대중 음악판을 지켜왔지만, 다시는 대중적으로나 실험적으로나 이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는 점이다. 부활과 이승철의 다른 곡들이 모두 잊혀진다 해도, 종소리를 그대로 재현하는 인상적인 기타 인트로로 시작하는 <희야>의 부르짖는 애절한 목소리는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의심할 바 없는 한국 최고의 록 발라드 넘버로서, 이 앨범의 진짜 백미이자 당대 가장 실험적인 음악 이었던 <비와 당신의 이야기>가 또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는 것은 당대의 대중이 음악을 받아들이는 눈이 지금보다 결코 낮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것이 아닐까. (신승렬)

13. 김민기 1집 (1971)

1971년 약관을 갓 넘긴 한 섬세하고 문약해 보이는 청년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내뱉은 조용한 목소리는 그 즉시 대중가요의 판도를 뒤흔들었고 곧 제3 공화국 정권에 의해 신화로 사라져갔다. 대중가요사에 있어서 형식적인 면에서의 혁명이 신중현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면 김민기의 치열한 가사 쓰기는 그것들이 내포하고 있는 비판과 도전의 메시지를 대중가요계에 또 하나의 화두로 던져놓았다. 자의든 타의든 간결한 멜로디에 얹혀진 시들은 시인을 신화적인 사회 운동가로 바꾸어놓고 말았다. 이렇듯 그의 노래들은 미학과 저항성을 따지기 이전에 당시부터 지금까지를 아우르는 저항적 성향의 가요들에 미쳤던 영향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나의 노래가 우리 나라에서 가질 수 있는 최대치의 힘을 <아침 이슬>을 비롯한 그의 노래들이 보여주었고 또한 그 과정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부표처럼 떠도는 어설픈 낭만주의가 만연하던 당시 대학, 즉 지성의 중심에서 뚜렷한 방향을 제시하는 이정표로서 자리매김했던 이 자그마한 노래들에 대한 추모는 바람결을 타고 떠도는 민들레처럼 아직까지도 그 씨앗들을 뿌리고 있다. (황정)

14. 김현식 3집 (1986/서라벌레코드)

죽음 후에 갑작스러운 인기는 그를 꾸준히 보아온 사람들에게 오히려 회의적으로 보였으리라. 비록 가장 인기를 얻은 것은 사후에 나온 6집이지만, 그의 음악적 절정은 이 3집이 아니었을까. 최고의 명곡 중의 하나인 <비처럼 음악처럼>에서의 힘과 애절함을 겸비한 보컬은 그 누구도 감히 대적할 수 없는 (참으로 진부 해진 표현이지만) 보컬의 ‘지존’이 바로 그임을 들려준다. 그러고 보면 80년대에는 정말 노래 잘하는 가수들이 사랑받았었다. 모두 밑바닥에서 시작했고, 라디오를 통해 곡 자체로 평가받었고, 서서히 스타덤에 올랐다. 그건 (또 한번 진부한 표현을 빌리자면) 정말로 진검승부 그 자체였다. 가수보다 팬클럽이 먼저 등장하는 따위의 온갖 암기가 난무하는 90년대의 무림과는 격이 틀렸단 말이다. 그가 이런 혼탁한 무림을 보지 않고 <떠나가 버렸네>를 부르며 사라져간 건 어쩌면 그 자신에겐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신승렬)

15. 김광석 다시 부르기 2 (1995/킹레코드)

이만큼 명쾌한 한국적 어법의 포크 록 세션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4집 이후 완벽한 아티스트로 성장한 김광석은 자기성찰적인 고감도의 노래들을 4집에서 보여주었고, 여기에 90년대의 독보적인 음악감독인 조동익의 편곡과 그의 밴드가 펼친 소박한 세션이 보태지면서 감동적인 앨범 하나가 탄생되었다. 90년대 모던 포크의 적자로서 ‘한국 모던 포크 베스트 모음집’을 만들고 싶었던 그는 이 음반으로 완벽한 결실을 보았고, 여기에는 한대수의 <바람과 나>, 이정선의 <그녀가 처음 울던 날>, 양병집의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김의철의 <불행아>, 김창기의 <변해가네>, 유준열의 <새장 속의 친구>, 한동헌의 <나의 노래>, 자신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등이 실렸다. 특히 동물원의 <새장 속의 친구>와 자신의 4집에 수록된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은 편곡자의 역량에 따라 얼마나 노래가 다르게 바뀔 수 있는지를 보여준 조동익 편곡의 승리다. 역사상 가장 훌륭한 모던 포크의 진품이며, 두고 두고 들어도 질리지 않을 이 음반은 이 땅에 사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소장해야 할 가치를 갖고 있다. ‘명반’은 명예의 전당에 보관된 먼지 쌓은 음반이 아니라 가까이 두고 듣는 음반을 지칭한다. (박준흠)

16. 동물원 1집 (1988/서울음반) [김창기(v), 김광석(g, v), 유준열(g, b, v), 박경찬(v), 박기영(key), 이성우(g)]

일상적인 언어, 따뜻하면서 낙관적인 시각, 아름다운 멜로디로 대표되는 동물원의 데뷔 앨범이다. 앨범 전편에 녹아 있는 평범하지만 시적인 언어로 쓰여진 노래말은 이후 수많은 사랑이야기의 모델이 된다. 보통 사람들이 평소에 표현하지 못하고 마음속에 담고만 있던, 지나치기 쉬운 일상의 세세한 감정들을 글로 옮겨낸 김창기의 작사실력은 돋보였고,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지만 결코 평범하거나 진부하지 않았던 그의 작곡실력 역시 뛰어났다. 또한 비록 한 곡밖에 부르지 않았지만 김광석의 목소리는 눈에 띄는데, <거리에서>에서 그가 부르는 고독과 사랑의 감정들은 작곡가 김창기의 곡의 느낌을 배가시키고 있다. <변해가네>와 <잊혀지는 것>, <그리움>으로 이어지는 삶에 대한 잔잔한 감정들에 대한 표현이 비록 저항적이거나 사회비판적인 당대 운동가요와 언더그라운드 정신과는 대립되는 요소들을 많이 담고 있기는 하지만. 그 속에서 발견되는 삶에 대한 희망과 긍정이 아름답고 쉬운 멜로디에 담김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안식처가 되었다. 또한 유재하, 이문세와 함께 동물원이 이 앨범을 통해 발라드 음악들의 대부분의 아이템을 제공했다는 사실 또한 주목할 만하다. (김영대)

17. 듀스 Force DEUX (1995/월드뮤직) [이현도(v, all inst, prog), 김성재(v)]

댄스 그룹 듀스가 ‘뮤지션’으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게 되는 앨범이자 국내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힙합 음악을 제대로 담고 있는 작품이다. 이 앨범 에서 비로서 작사가로서의 이현도는 제대로 된 자기 목소리를 내게 되며, 독특한 그만의 리듬편곡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아류라는 편견을 일순간에 지우게 만든다. <굴레를 벗어나>, <이젠 웃으면서 일어나>에서 그들은 이제 그들만의 작곡/편곡 스타일을 확립하면서 비로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한국어 랩의 창작에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뛰어난 각운은 작사가로서의 이현도의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고 있으며, 보코더를 비롯한 다양한 악기와 편곡 스타일을 적극 활용한 앨범의 수록곡들은 그의 음악적인 성숙과 자신감을 대변한다. 무엇보다 이 앨범이 중요한 것은 하나의 유행으로만 받아 들여지던 힙합을 음악적이고 문화적인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도전해서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점과 그것이 주류의 두 댄스 듀오인 이현도와 김성재의 손으로 만들어짐으로 인해 힙합 문화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이다. <굴레를 벗어나>의 그루브와 <사랑하는 이에게>의 서정성을 고루 갖춘 이현도의 음악적 감각은 발군이다. (김영대)

18. 서태지와 아이들 4집 (1995/반도음반) [서태지(v, prog, key, g, b), 이주노(v), 양현석(v)]

서태지의 모든 앨범은 명반으로 불러도 아깝지 않지만 이 4집아야말로 비로소 서태지의 음악적인 모든 재능이 집결된 명반 중의 명반으로 불러 마땅하다. 시대의 반항 정신과 젊음의 감수성을 갖춘 음악 장르로서 당대 팝음악의 최신 조류였던 갱스터랩과 얼터너티브 록을 전면으로 부각시킨 이 앨범에서 서태지는 자신의 창작능력의 극한점을 귀로 확인시켜준다. 3집 이후 이미 그 영향력을 상실한 두 댄서 양현석과 이주노의 정체성 문제는 팀의 해체로 이어지며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팀이 가지는 한계점을 보여주게 되지만, 단지 음악적인 면으로만 평가할 때 이 앨범은 단연 최고 수준이다. 특히 과 <필승> 등에서 나타나는 서태지의 장르에 대한 이해력은 천재적인 감수성의 결과물이라는 말밖에는 달리 설명이 불가능하다. 서태지는 이미 <교실 이데아>가 담긴 3집을 통해 놀랄 만한 변신을 시도했지만, 개인적으로 3집보다 4집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이 앨범이 보다 ‘대중적’이면서 간결하기 때문이다. 큰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구석구석 시대에 대한 비판과 냉소가 어려있는 이 앨범 수록곡들의 가사는 매우 독특한 것이다. 특히 방송금지와 판금을 거치면서 연주곡만 수록 되는 해프닝을 낳은 <시대유감>은 가사가 다시 실려 다시 발매된 이후 싱글 앨범보다도 그 저항의 의미가 더욱 남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김영대)

19. 시인과 촌장 숲 (1988/서라벌레코드)

시안과 촌장만큼 아쉬운 그룹이 또 있을까? 실제적으로 혼자 시인과 촌장을 이끌었던 하덕규는 종교에 귀의해 CCM에 전념하는 지금이 더 보람있다고 단언 하지만, 귀를 베일 듯한 <가시나무>, <비둘기 안녕>의 감성이나 <새봄나라에서 살던 시원한 바람>, <사랑일기>의 건강한 노래말과 멜로디를 사랑하던 사람들 에게는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시인과 촌장의 두 앨범은 어느 한 곡도 가볍게 넘어가지 않는, 머릿곡만 중요시 여기던 당대의 관행에서는 이례적인 앨범이다. 비록 그에게는 지금 대중음악의 장이 환멸만 가득한 소돔과 고모라로 보일지 모르지만 진정한 ‘사도’라면 그 속에 뛰어들어 자신의 음악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이 올바른 태도가 아닐지. 그가 속한 ‘하나음악’의 뮤지션들(한동준, 장필순, 조동익 등)이 종교적인 음악활동과 더불어 대중음악에서도 90년대 까지 꾸준하게 수작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그 모범적인 예가 될 것이다. (신승렬)

20. 산울림 2집 (1978/서라벌레코드) [김창완(g, v), 김창훈(b, v), 김창익(d)]

산울림 음악의 정점이자 70년대 한국록의 최고작이다. 전해에 <아니 벌써>가 담긴 폭발적인 데뷔 음반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더니 <이 기쁨>, <어느 날 피었네>, <안개 속에 핀 꽃>이라는 최고의 완성도를 보여주는 명곡으로 록 매니아들을 흥분시켰다. 김창완의 퍼지 톤 기타와 그의 사촌동생 김난숙의 고풍 스러운 올겐 사운드로 특징지워지는 산울림 초기(1~3집)는 그 사운드의 독자성으로 먼저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70년대 말 암울한 유신시대(비록 김창완은 아니라고 했지만)에 세속을 벗어난 듯한 천진난만한(?) 노래들이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은 사실 의아하고, 그 시대를 생각한다면 언밸런스한 면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는 어쩌면 김창완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고, 결과적으로는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인정하는 고유의 사운드 정체성을 갖는 명반이 탄생되었다. 하지만 이 음반의 가치는 10여 년이 지난 뒤에야 인정되었다. 당시 산울림은 아이돌 그룹(?)이었고, 이 음반은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노래 불러요>, <나 어떡해>의 엄청난 성공으로 그저 잘 팔리는 음반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한국 록, 특히 록 밴드를 얘기할 때 가장 먼저 거론해야 할 뮤지션은 산울림이고, 그 결과물은 당연히 그들의 본작이다. (박준흠)

21. H2O 오늘 나는 (1993/로얄레코드) [김준원(v), 박현준(g), 강기영(b), 김민기(d)]

“회색 해는 넘어가고 밤과 별이 머리 위로 떠오르면/고개 들어 노래해야만이 느낄 수 있는 노래를 하지/언제부터 우린 이다지도 막연히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노래를 불러야 했을까”(<나를 돌아보게 해>)를 접했을 때 들었던 생각은 ‘이제 우리 나라에서도 80년대 헤비메틀의 시대는 저물었구나’였다. H2O는 80년대 말 시나위(강기영, 김민기), 카리스마(김민기, 박현준)라는 한국 헤비메틀의 역사에서 한 획을 그었던 밴드들의 중심 멤버들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강기영은 베이스 파트에서, 김민기는 드럼 파트에서 최상의 기량을 자랑하던 연주자들이었다. 하지만 90년대에 재결성된 H2O는 데뷔 음반의 LA 메틀 스타일에 변신한 당대의 모던한 록을 추구하였다. 음악적인 근간은 롤링 스톤즈와 같이 리듬 위주의 록에 두었고, 멤버 모두가 참여하는 방식의 음악을 만들어갔다. (<고백을 하고>에서는 멤버 모두가 돌아가며 노래한다). 멤버 각자가 가진 출중한 곡 쓰기 역량으로 단 한 곡도 버릴 노래가 없는 완벽한 앨범이 된 이 음반에서 강기영의 <고백을 하고>, <나를 돌아보게 해>, <짜증스러워>, 박현준의 <착각 속에서>, <방황의 모습은>, <그녀의 모습을>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명곡 들이다. (박준흠)

22. VARIOUS ARTISTS 우리노래 전시회 1집 (1985/서라벌레코드)

‘8인8색’, 1985년 요란스럽지 않게 등장한 신인 뮤지션들의 옴니버스 앨범 <우리노래 전시회>의 재킷 뒷면 해설(추천사와 같은)처럼 이 앨범에 참여한 뮤지션 모두는 이후 나름의 색으로 80년대 대중음악을 풍요롭게 했다. 이 앨범에서 압권의 순간을 제공하는 (그리고 이후 들국화 결성의 계기가 된) 전인권의 <그것 만이 내 세상>의 존재감이 다른 이들을 묻히게 한 느낌도 있지만 <너무 아쉬워하지 마>의 어떤날, <비둘기에게>의 시인과 촌장의 존재 또한 무척 소중했다. 전인권과 함께 들국화의 한 축을 이룬 최성원이 이 앨범의 프로듀서를 담당하며 이광조, 강인원 등에게 곡을 제공했고, 이후 발표된 이들의 솔로 앨범은 공히 히트 앨범이 되었다(이들 중 특이한 행로를 밟은 이는 <그댄 왠지 달라요>로 참여했던 박주연으로, 현재 최고의 ‘히트메이커’ 작사가로 활동 중이다). 그리고 <우리노래 전시회>가 제공했던 미덕의 하나는 당시 참여했던 세션 체계가 지금의 조동익 밴드로까지 이어지며 국내 대중음악에 독특한 톤을 제공하는 존재로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민규)

23. 신촌블루스 1집 (1988/지구레코드)

밴드라는 개념보다는 일군의 블루스를 좋아했던 뮤지션들의 연합체, 동호회 성격으로 시작했던 신촌블루스는 1986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이래 대중들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얻어내고 드디어 이 데뷔 음반을 발표한다. 한영애의 카리스마가 빛나는 <그대 없는 거리>로 시작하며 역시 그녀의 <바람인가>로 끝나는 이 앨범은 이정선과 엄인호가 사운드의 양대축을 형성한 그들 둘의 절충적인 성격의 음반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라이브에서 보여준 강렬한 맛은 없고, 너무 정제된 연주음반이라는 느낌을 받게 한다. 정통 블루스를 하려 했던 이정선의 , <바닷가에 선들>과 가요에 블루스를 접목하려 했던 엄인호의 <그대 없는 거리>, <아쉬움>을 비교해서 들을 수 있는 재미도 있다. 박인수가 다시 부른 신중현의 <봄비>도 멋있는 곡이다. 이 음반으로부터 한국에서 블루스의 대중화(?)는 실현되었고, 중견 뮤지션이 고사당하는 이 땅에서 예외적인 경우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것은 80년대 현실에서나 가능한 얘기인가? (박준흠)

24. 동물원 2집 (1988/서울음반) [김창기(g, v), 김광석(g, v), 유준열(b, v), 박경찬(key, v), 이성우(g)]

이 음반은 아마추어 정신을 간직한 뮤지션들이 만든 최상의 결과물이다. 일례로 핵심 멤버인 김창기에게 음악은 취미 이상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음악 작업이 치열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전업 뮤지션을 지향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들은 멤버 모두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갖고 있었고, 사실상 밴드로서의 모습을 상실한 7집 전까지는 때마다 명작들을 만들어냈다. 자신들도 성공을 예측하지 못했던 1집에서 보여진 녹음과 세션의 문제점들이 보완된 본작은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새장 속의 친구>, <동물원> 등의 뛰어난 곡들이 수록된 80년대 명반 중의 하나다. <흐린 가을하늘에 편지를 써>에서 볼 수 있듯이 김창기의 얘기를 풀어가는 감성과 이를 단박에 끌리는 감상적 멜로디로 만드는 능력은 비범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음반에서는 동물원 내에서 김창기와 함께 다작은 아니지만 <새장 속의 친구>와 같이 주목할 만한 곡을 만든 유준열도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른다. (박준흠)

25. 서태지와 아이들 1집 (1992/반도음반) [서태지(v, prog, key, g, b), 이주노(v), 양현석(v)]

“야! 태지야 나와라”라는 의미의 프롤로그 음악 <YO! Taiji>로 시작하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이 역사적인 데뷔 음반은 90년대 댄스뮤직 씬을 새롭게 정립하고 또한 평정했다. <난 알아요>가 TV에서 울려 퍼지면서 형성되고 논의된 음악 씬과 문화적 파장은 결과적으로 90년대 대중음악·문화의 전환점이자 시작점이 되었다. 이는 그에 대한 호감과 그의 음악성 인정여부를 떠나서 현실이고 역사였다. 조용필 이래로 형성된 ‘오빠부대’를 완벽하게 10대들로 재편한 그는 이후 대중음악 씬의 주류를 철저하게 10대들로 만들어 버렸다. 혹자는 그를 평할 때 ‘혁명성과 상술을 겸비’한 노련한 음악장사꾼이라 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의 음악적 역량은 인정해주어야 한다. 음반을 발표할 때마다 무려 100만장씩을 팔아낸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난 알아요>, <환상 속의 그대>가 커다란 히트를 기록했지만 이 음반의 음악적 정수는 손무현의 기타 솔로가 빛을 발하는 유로 댄스풍의 탁월한 노래 <내 모든 것>이었고, 신대철이 참여한 <ROCK’N Roll Dance>도 좋았다. (박준흠)

26. 서태지와 아이들 3집 (1994/반도음반) [서태지(v, prog, key, g, b), 이주노(v), 양현석(v)]

대중음악에서의 ‘장르’들은 분명 물리적으로는 공존하지만 사실 ‘생성하고 소멸’ 하는 듯이 보이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장르의 생성과 소멸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이는 자연스러운 이동이라기보다는 소위 인기 아티스트들의 ‘친위 쿠데타’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카리 스마를 지닌 한 아티스트가 ‘새로운 장르’를 공급하면서 대중은 그 아티스트의 변화에 새롭게 적응해야만 한다. 대중적인 장르 이동이 너무나 부실했던 이 땅에서 ‘가장 충격적인’ 친위 쿠데타는 바로 이 앨범이었다. 아무리 이전 앨범에서 변신의 기미나 예고편을 선보였다 하더라도 일주일에 7번 이상 TV에 출연하는 ‘최고 인기 아티스트’가 이렇게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은 그 아티스트의 용기와 자신감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어제까지 옐로우 보이스의 미소년들이 통기타 반주 아래 실연의 아픔을 노래하는 것을 즐기던 대중들이 오늘은 육중한 디스토션 기타와 차가운 랩에 얹힌 ‘교육현실에 대한 고민’을 듣게 되다니. 서태지와 아이들의 작품 중 가장 일관성 있는 앨범이라는 점도 훌륭하지만 이러한 발상의 전환이야말로 가치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그 의도가 상업적인 것이든 아니든 말이다. (조원희)

27. 김현철 1집 (1989/서라벌레코드)

20살의 천재 키보디스트 김현철의 첫 번째 음반은 기적과 같았다. 독특한 화성을 통한 작곡 스타일로 대중가요의 수준을 한단계 상승시킨 이 앨범에서 그는 그 동안 국내 대중가요가 탐구하지 못했던 재즈 화성과 선율을 적극적으로 가요에 도입, 그룹 어떤날(특히 조동익)에게 영향을 받은 담담한 보컬을 통해 예민한 감수성을 노래함으로써 그의 데뷔 앨범을 ’10년이 지나도 기억될 만한 명반’으로 부상시켰다. 그의 2집과 비교했을 때, 아직은 덜 여문 듯한 김현철의 목소리는 분명한 자기 색깔을 내고 있다고는 보기 어렵지만, 이 앨범의 최고 명곡으로 불러도 아깝지 않은 <오랜만에>와 20살의 순수함을 간직한 <동네>, <춘천가는 기차>에서 확인할 수 있는, 순수한 예술적 정열이 담긴 뛰어난 음악적 감각은 감히 천재성의 소산이라 말할 수 있다. 일상에 대한 평범한 시각 속에서 따뜻함을 발견할 수 있는 이 앨범의 수록곡들은 아마추어리즘과 프로의 재능이 만난 결과다. 좋은 의미건 나쁜 의미건 간에 이후 이 앨범과 똑같은 감수성의 앨범은 김현철의 음악에서는 찾아볼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뛰어난 재능의 프로듀서 겸 작곡가, 편곡가를 발굴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앨범의 의미는 충분하다. (김영대)

28. 강산에 Vol.0 (1992/킹레코드)

참으로 기분좋은, 소박한 음반으로 이 음반이 기억되는 이유는 아마도 <할아버지와 수박>, <···라구요>, <예럴랄라>, <장가가는 날>의 고향 전원, 대가족의 내음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의미심장하게도 이 음반이 ‘Vol.0’를 달고 나온 것처럼 이 세계는 이미 부재하는 기억 속에서 미화된 이상적 공동체의 편린이었으며, 강산에는 이후 다시는 한가롭고 양지바른 이 동네로 돌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주목받지 못한 곡들, <훔쳐 본 여자>, <돈>의 삭막하고 황량한 대도시의 압박감에 대한 비판적 시선과 강박관념과도 같은 사랑의 스케치로 나아간다. 일렉트릭 기타가 주도하는 한경애/박청귀의 두 곡이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한 의미로 튀는 가운데 포크 록적인 강산에의 자작곡들은 걸출한 싱어 송 라이터의 출발을 알렸고, ‘전형적인 록커’ 이미지를 재생산하는 한 캐주얼 업체의 모델로도 활동하는 등 대중의 기대에 부응하는 듯 했으나 결국 3집의 방향전환으로 박제의 위험을 비켜난 후 잡을 수 없고 규정하기 힘든 존재로 남게 되었다.

29. 윤도현밴드 2집 (1997/서울음반) [윤도현(v, g, har), 강호정(key), 유병열(g), 엄태환(g), 박태희(b), 김진원(d)]

이 음반은 윤도현의 2집이지만 윤도현밴드로서는 데뷔 음반이며, 전투적인 노동가요를 불렀던 록 그룹 메이데이의 프로듀서를 맡았던 유병열과 현재 한상원 밴드로 이적한 강호정의 합작품이다. 윤도현은 포크 록 그룹인 종이연 출신으로, 1994년에는 <타잔>이 수록된 데뷔 음반을 발표했다. 김현성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 같은 발라드와 자신의 <깨어나라> 같은 비판적 의식이 담긴 록, 또는 <임진강> 같은 자신 주변의 모습을 담은 노래들이 섞여 있었던 이 데뷔 음반은 개개의 곡은 좋을지라도 디렉터 부재로 통일감이 느껴지지 않는 음반이었다. 하지만 본 음반은 그간 윤도현의 성장도 느껴지지만 강호정의 재능 있는 재능있는 디렉팅으로 적절한 세션을 이끌어낸다. 박노해의 시에 윤도현이 곡을 붙인 <이 땅에 살기 위하여>가 압권으로 등장하는 이 음반은 그 외 <긴 여행>, <철문을 열어>라는 그들만의 개성이 살아있는 곡들이 있고, <다시 한 번>은 치열하면서도 아름다운 슬로우 록이다. (박준흠)

30. 노이즈가든 Noizegarden (1996/베이) [박건(v), 윤병주(g), 이상문(b), 박경원(d)]

노이즈가든을 논하기 전에 먼저 주목해야 할 것들이 있다. 첫째는 그들이 한국 록 음악의 어떠한 계보에도 포함시킬 수 없는 ‘섬’이라는 점이고, 둘째는 그들이 비인기 종목인 록 음악의 부흥을 위해 대중친화적인 요소를 집어넣으려 애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셋째는 ‘사이버 공간’이라고 다른 이들로부터 이름지어진 공간에서 출발하여 ‘실제 공간’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은 첫 예시라는 점이며,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주목사항’들은 그들의 음악을 이야기함에 있어 ‘매우 보잘 것 없는 세일즈 포인트’일 뿐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러한 주목사항과 합의점들은 이들의 음악을 소개하는 데 있어 오히려 이들의 중요도를 감소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첫 앨범은 ‘신화’다. 앞으로 계속될 윤병주/노이즈가든의 행보에 대한 ‘건국신화’라고 생각하면 더욱 안전하다. 이러한 건방진 예언에 대한 검증은? 이 앨범을 들어보라. 그리고 그 이후를 주목하라. (조원희)

31. 언니네 이발관 비둘기는 하늘의 쥐 (1997/석기시대/킹레코드) [이석원(v, g), 류기덕(b), 유상철(d), 정대욱(g)]

요상한 이름을 지닌 이 밴드의 첫 앨범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선정적일지도 모른다는 혐의를 지닌 밴드명에 비해 너무나 소프트하고 자조적이며 때로는 서정적이기까지 한 이 앨범을 말이다. 이들을 ‘소인극’적인 아마추어리즘으로 해석하려 한다면 이들의 음악은 지나치게 세련되었고 지나치게 팝적이다. 그렇다고 기존의 록 음악계에 던지는 하나의 도전으로 받아들이려 한다고 보기에는 이들은 너무나 기존 록음악의 이디엄을 잘 이해하고 있다. <로랜드 고릴라>의 스트레이트함과 <푸훗>의 예쁜 멜로디라인, 거기에 <소년>의 애수 넘치는 가사는 이들을 ‘막가파 모던 록 밴드의 원조’로 칭하는 많은 청자들의 오류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드물게도 발전가능성을 가진 동시에 그 자체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경우가 바로 이 앨범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부실하고 무성의한 사운드는 감출 수 없다”라고 주장하는 음악광들에게 이언쿠퍼의 마스터링이 신해철의 앨범보다 벌써 2년전에 이 앨범으로 한국시장에 선보였다는 사족을 덧붙여본다. (조원희)

32. 강산에 나는 사춘기 (1994/킹레코드)

<눈물 젖은 두만강>의 ‘두만강 푸른 물에 노젓는 뱃사공을’의 가사를 가져온 <라구요>의 히트가 강산에를 ‘기인’으로 만들었다면 2집 <나는 사춘기>는 그를 심각한 표정의 록커로 규정지었다(‘열린음악회’용 가수라는 인식을 포함하여). 이러한 오해의 지점은 뮤지션으로서 강산에의 자유로움을 속박하게 되었고, 그래서인지 3집 <삐따기>는 상대적으로 저조한 느낌을 주었다. 올해 4집 <연어>를 발표하며 다행히도 자신의 음악을 찾아가는 듯한 강산에의 이 앨범은 강산에 개인의 자유로운 정서와 세상에 대한 시각이 훌륭히 매치된 포크 록 앨범이다. 공익 광고에도 쓰였던 <넌 할 수 있어>의 라디오 히트가 이 앨범의 유명세에 한 몫 했지만 반전을 노래한 <더 이상 더는>, <선> 등의 무거움과 <블랙커피>, <우리는>, <널 보고 있으면>과 같은 개인적인 서정이 한 앨범 내에서 융합되고 있다는 것이 이 앨범의 가장 큰 미덕이다(박청귀, 한상원, 이근형, 최태완 등의 세션과 디렉팅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영화 <너에게 나를 보낸다>에 <노란 바나나>가 삽입되었고, <돈>의 경우 공윤에서 문제시되어 제목이 <문제>로 바뀐 재미없는(!) 일도 있었다. (김민규)

33. 한영애 바라본다 (1988/서라벌레코드)

“여보세요-거기 누구 없소?”-<누구 없소?>의 첫 소절이 라디오를 통해 귓전을 때렸던 순간이 매정한 10년 세월 지난 오늘까지 생생하다. 그리도 거침없이 포문을 열어젖힌 후 <바라본다>의 대단원까지 하나 빠짐 없는 완성도를 자랑하는 발군의 작곡자들의 다양한 곡들이 변증법적 승화를 이뤄내는 것이 놀랍다. 거칠고 힘있지만 때로는 흐느낄 줄 아는 한영애의 목소리는 그 자체 영혼을 가진 듯 자유롭게 활주하며, <누구 없소?>, <코뿔소>의 록, <비애>의 현악 세션의 슬로우 넘버, <루씰>의 블루스를 모두 껴안아 그녀만의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가시밭 넝쿨 아래 착한 왕자님을 기다”리던 비탄에 젖은 <여인>이 곧 “코 힘을 힝힝 뒷발을 힘차게 치는” <코뿔소>로 변신하는 장면은 바로 누군가의 수사대로 ‘가슴에 선녀를 간직한 야수 혹은 선였던 야수’로서의 여성이 청각적으로 현현하는 순간이었으니. (조성희)

34. 시나위 Down And Up (1987/오아시스레코드) [신대철(g), 김종서(v), 강기영(b), 김민기(d)]

김종서(보컬), 신대철(기타), 강기영(베이스)이라는, 지금 한국 대중음악의 한 기둥을 이루고 있는 비루토죠(명인)들의 80년대 최고의 명반이 시나위 2집이다. 이 한 장으로 한국대중음악이 당시 외국음악에 대해 가지고 있던 콤플렉스가 일시에 극복되었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이겠지만, 당시 중·고등학교마다 두셋씩 있었던 스쿨 밴드들이 이 앨범을 듣고 한국에서도 제대로 된 헤비메틀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그리고 이들은 그 80년대 스쿨밴드 문화의 첫 성과다).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은 톤을 자유롭게 구사하던 김종서의 보컬, 현재의 실험성과 원숙함은 없지만 정교함과 화려함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 신대철의 기타는 이 후 수많은 음악지망생들의 우상이자 벤치마킹 대상, 넘어설 수 없는 벽이 되었다. <해 저문 길에서>의 애상적인 연주에서 4분 13초간 그야말로 한치의 틈도 없이 몰아치는 <연착>의 연주까지 어느 하나 놓칠 것 없는 순도 100%의 명반이다. (신승렬)

35. 신중현과 엽전들 1집 (1974/지구레코드) [신중현(g, v), 이남이(b), 권용남(d)]

일단 누가 듣더라도 이 앨범은 분명 한국적이다. 무슨 무슨 국악기를 사용했다느니 하는 여타 음악들과 비교하는 군소리 없이 당시 음악조류에 맞추어 나가던 그야말로 한국의 록이라고 할 만한 음반이라는 것이다. 신중현(g/v)과 이남이(b), 권용남(d)의 라인업으로 이들 최고의 히트곡(?) <미인>이 첫 곡으로 실려 있고 기타가 하나인 밴드에서 흔히 그렇듯 앨범에서는 트윈기타로 오버 더빙되어 있다. 도치된 가사와 방울 소리가 사용된 <나는 너를 사랑해>, 태양이 떠오르는 모습을 그린 연주곡 <떠오르는 태양> 등이 담겨 있는데, <떠오르는 태양>에서의 이남이의 베이스 연주는 ‘떳다 떳다 비행기’를 부르던 그의 모습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기타리스트가 아니라도 김추자를 포함한 펄 시스터스 등을 키워낸 신중현은 지금 국내 록을 얘기할 때 감초가 된 뮤지션이 되었다. (한유선)

36. 조동진 1집 (1979/대도레코드)

1985년이었던가, 왠일로 조동진이 TV에 출연하여 어쿠스틱 기타 하나 달랑 맨 채 무덤덤하게 노래를 부른 후 자신이 아끼는 후배라고 들국화를 소개한 적이 있다(역시나 들국화 또한 못마땅한 표정으로 <행진>을 연주했다.) 이처럼 매체에 노출되기를 극도로 꺼려했던 조동진은 80년대 내내 뭇 후배들을 이끌고 ‘언더브로드캐스트’의 정신적 지주로 대단한 역할을 했으며 지금도 하나기획(조동익, 함춘호, 장필순, 낯선 사람들, 박용준, 한동준, 김광진 등이 소속)의 대표로 국내 대중음악의 한 축을 이끌고 있다. 70년대 이미 한대수, 김민기, 양희은, 이정선 등에 의해 개화되었던 포크의 새로운 발화지점이 바로 조동진 1집이었고, 차분하게 세상과 자신을 관조하는 시선의 시작점 또한 이로부터였다. ‘왕’ 초보 기타 교본의 단골손님 <행복한 사람>처럼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단순한 구성의 곡과 간결한 가사로 인해 간혹 ‘이지 리스닝’으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실부의 상처를 노래한 <겨울비>, 고은의 시에 곡을 붙인 <작은 배>등은 편안한 감성에서 나온 감상용 노래가 결코 아님을 보여준다. (김민규)

37. 서태지와 아이들 2집 (1993/반도음반) [서태지(v, prog, key, g, b), 이주노(v), 양현석(v)]

1. 몇 개월간 잠적한다.

2. TV는 돌아온 영웅을 위한 1시간짜리 컴백 쇼를 준비한다.

3. 돌아온 그들은 파격적인 복장과 춤을 선보인다.

4. 새 곡을 발표할 때마다 비평가들은 그의 곡에 장르의 잣대를 가져다 대기 바쁘지만 그 어떤 분석으로도 규정할 수 없는 신곡은 상업적인 대중성이 없다는 이들의 비관론을 가볍게 일축하고 정상에 오른다.

5. 수십년간 음악인들을 길들여왔던 TV, 그들의 음악을 규정해왔던 대중과 가수가 처음으로 그 주종관계를 역전시키며 가수에게 TV와 팬이 길들여졌다.

6. 그리하여 대중에게 영합하는 ‘딴따라’는 비로소 자신의 예술로 대중을 움직이는 ‘아티스트’로 인정받는다.(어느 가수는 딴따라라고 스스로를 규정하지만…)

7. HOT와 서태지와 아이들의 공통점은 1, 2, 3이고 그 차이는 4, 5, 6이다. 그리고 6의 경지에 오른 한국의 대중가수는 둘 뿐이다. 조용필과 서태지. 이것이 그만의 권능이고 용기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추종했지만 아무도 그 위치에 이르지 못했다. (신승렬)

38.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 (1984/서라벌레코드)

1984년, 이제는 시사만화의 조롱거리로나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주로 뒷모습이) 전 모씨가 아무 시간대의 아무 뉴스에서나 머릿기사로 등장하셨던 ‘땡전시대’의 한가운데. 1987년 이후의 역사적 전개가 불순한 몽상 이상이 될 수 없었던 스산한 시절에 은근슬쩍 대중의 잠긴 귀를 파고들었던 언더그라운드 앨범이 있었으니, 그 주체는 문승현 등 대학연합노래패 ‘메아리’를 모태로 김민기의 노래극 <개똥이>에 참여했던 노래 운동권의 청년들이었다. <갈 수 없는 고향>에서 산업화 과정의 최대 희생양 중 하나였던 여공들의 비애를 느낀다거나, 갈 데 없는 동요풍의 <바람 씽싱>에서 어머니의 만류를 뿌리치고 봄을 찾아 나가려는 젊은이들의 비장한 각오를 읽는다는 건 행간 읽기의 도시들이었던 그 시절 사람들에게나 가능한 은유·상징·해독의 경지를 요구한다. 그에 비하면 원초적인 조국애를노래한 <산하>, <그루터기>의 남성적 서정은 한결 투명한 메시지를 전하며, 김영동의 대금에 이끌려 아이들의 풋내나는 목소리로 들려주는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는 교과서에 갇혀 있던 우국지사 충정과 비탄이 당대와 조우하고 있다. 주의 깊게 들으면 남성합창의 고음부에서 바이브레이션 섞인 목소리 하나가 튀는 걸 잡을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처음 대중에게 들려지는 김광석이다. (조성희)

39. VARIOUS ARTISTS Our Nation 1집 (1996/드럭) [크라잉 넛 : 이상면(g), 박운식(g, v), 한경록(b), 이상혁(d)  엘로우 키친 : 최수환(g, v), 도순주(g, v), 여운진(b), 최승훈(d)]

“섹스 피스톨즈와 소닉 유스의 다소 기이하고 조금은 불편해 보이는 동거”, 1996년 홍대 앞 클럽 씬 최초의 산물이자, 국내 최초의 펑크 음반이라는 (가시) 면류관을 썼던 두 드럭 밴드의 이 동거 앨범이 청자에게 던지는 최조의 인상이다. 그후 2년. 입장과 관점에 따라서 ‘벌써?’ 혹은 ‘아직!’ 이라는 각기 다른 탄성을 자아낼 세월이 흐른 1996년, 크라잉 넛과 옐로우 키친은 각각 독집 앨범을 내었고 ‘우리(만의) 나라’는 공중파 방송의 일방적 주입을 거부하는 일부 젊은이들의 갈증을 존립근거로, 신문문화면의 변덕스런 주목과 90년대의 또 다른 산물인 대중문화평론가들의 지지 등을 얻으며 음악생산/연주-판매-소비의 일정 공간을 확보했다. 펑크 씬 최초의 히트곡 <말 달리자>를 대표로 크라잉 넛은 적대전선을 분명하게 긋고, 그들 세대 불만을 날 것 그대로 외쳐대는 보컬을 질주하는 사운드에 얹어 한국 펑크 록의 최대 (예상)수용층인 청소년들의 갈 곳 없는 심화를 터뜨리는 돌파구를 제공했고 이후 드럭은 그들의 해방구로 변모하게 된다. 그 뒤를 잇는 옐로우 키친의 노이즈 친화적인 복잡한 구성의 곡들은 이 새로운 음악생산의 장이 펑크의 단일독재로 귀결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으며, 이후 이들은 최수환, 도순주 2인조로 개편되어 본격적인 슈게이징, 드림 팝의 독자영역으로 나아간다. 기성의 다듬어진 사운드에 익숙한 귀에 신선한 충격을 제공했던 이 앨범에는 이후의 원형질이 무시무시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조성희)

40. 이문세 4집 (1987/서라벌레코드)

TV 방송에 출연하지 않는 언더그라운드(?) 발라드 가수 이문세와 그의 음악은 당대 청년문화의 한 단면이었다. 산울림이나 한대수, 김민기의 음악들이 투철한 실험정신과 젊음을 대표하는 시대적인 감성을 노래말과 연주에 담고 있었다면 이문세의 음악에는 그들이 미처 담지 못했던 젊음의 사랑과 이별, 아름다움이라는 보수적 감성이 담겨져 있다. 대부분의 노래들이 여성 취향의 발라드 일색이라는 이유 때문에 록 지향적인 음악평론가들에게 평가절하되는 감은 있지만, 뛰어난 감수성의 소유자 이영훈의 노래들과 이문세의 목소리가 만들어내는 어울림은 분명 독보적인 것이었다. 트롯 멜로디에 빚지지 않은 팝적인 발라드 곡들을 만들어냈다는 것만으로도 그 나름의 가치를 인정받을 만한 이들의 음악은 가능성을 보여줬던 3집에 이어 본 4집에서 그 완성도의 최고점에 이른다. <사랑이 지나가면>, <이별 이야기>, <그녀의 웃음 소리뿐>으로 대표되는 이 앨범의 아름다운 노래들은 작곡가이자 뛰어난 작사가인 이영훈의 섬세한 매력, 가수 이문세의 탁월한 보컬 능력이 절정에 다다랐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또 세련되며 진부하지 않은 감각으로 음악을 포장하고 있는 김명곤의 편곡도 매력적인데, 후렴구의 흡인력을 높이면서 키보드와 현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고 있는 이 방식은 발라드 음악을 편곡하는 데 하나의 전기를 마련, 이후 수많은 발라드 곡들의 모범답안으로 남게 된다. (김영대)

41. 조용필 1집 (1980/지구레코드)

작은거인, 젊은 오빠, 가왕.. 이런 단어들이 한국 가요계에서 최초이자 영원한 오빠부대를 가진 가수 조용필을 가리키는 별명들이다. ‘한국적’이라는 영원한 키워드를 가지고 30년 음악생활을 해온 조용필의 저력만으로도 가요사에 언급될 가치가 있을진대, 록, 발라드, 트로트, 민요, 동요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 수용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80년대에 발표된 본 앨범은 독집음반사상 국내 최초로 100만 장을 골든 디스크로(조용필과 그림자의 1975년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떨떠름한 성공이 있기는 했지만) 70년대 까지의 그의 록 음악과 이후의 구분이 되는 공식 첫 독집음반이다. 부드럽고 친근한 멜로디의 록 음악으로 한국 가요 시장의 전면으로 록 음악을 부상시킨 공헌은 둘째치고 이 음반에 대한 설명은 그 수상기록으로 대신한다. 그해 TBC 방송가요 최고가수상, 최고인기가수상, 최고인기가요상, 주제가 작곡상, 서울국제가요제 금상(<창밖의 여자>), MBC 10대 가수상, 가수왕상, 작곡상을 수상하고 다음해 KBS 골든 디스크상을 수상했다. (한유선)

42. 낯선 사람들 1집 (1993/하나뮤직/예원레코드) [고찬용(g, v), 허은영(v), 신진(v), 이소라(v), 백명석(v)]

낯선 사람들의 낯선 앨범. 90년대를 휩쓴 각종 열풍 가운데 하나였던 재즈 붐이 완전히 거품만은 아니었음을 증명했던 이 재능있는 보컬리스트 집단이 아직도 낯설게 느껴진다는 것은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 지칠 지경이지만) 한국 대중 음악계의 부박함을 또 한 번 거론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유재하 가요제가 배출한 기린아 고찬용을 중심으로 이소라, 신진, 허은영, 백명석이 모인 맨하탄 트랜스퍼 지향의 보컬그룹이 선사하는 목소리들의 향연은 정갈하고 맛깔스럽다. 특히 첫머리의 그룹 소개곡 <낯선 사람들>부터 가사를 쓴 이소라의 목소리가 이미 그 매력적인 비음을 과시하는데, 작사와 리드 보컬을 맡은 <왜 늘…?>에 와선 그 존재감을 뚜렷하게 각인하고 있다. <비닐우산>은 무반주 재즈 보컬의 맛을 제대로 선사하고 있고, 동화같은 가사의 <해의 고민>은 흥겹고 아기자기한 가운데 다양한 구음들을 선보인다. 전곡을 작곡한 고찬용의 비전대로 산뜻하고 깔끔하게 마무리된 것은 좋지만 한편으론 이 ‘TV용으론 긴 쇼’가 뭔가 하나 자극적인 ‘물건’으로 시장의 한구석을 확실히 장악 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부질없는 아쉬움이 든다. (조성희)

43. 따로 또 같이 2집 (1984/대성음반) [이주원(v, g), 나동민(v, g), 강인원(v, g)]

우리 대중음악사에서 이들의 가장 큰 공로는 스튜디오 세션의 전문화를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음반은 레코딩 스튜디오, 세션, 편곡의 중요성이 80년대 초반부터 젊은 뮤지션들 사이에서 부각되었지만 실제로 이것이 제대로 반영된 최초의 앨범이라 해도 무방하다. 이 음반의 프로필에 등장하는 이름들은 80년대 내내 중요한 음반들에서 볼 수 있는데, 레코딩 스튜디오로써 서울 스튜디오와 그 곳 소속 엔지니어였던 최병철, 그리고 세션맨으로서 이 음반에 참여한 이영재(기타), 김광민(피아노), 안기승(드럼) 등은 80년대 연주인이 되었다. 또한 들국화 창단 멤버인 최성원(기타)과 허성욱(피아노) 그리고 이장희의 동생 이승희(기타)도 연주에 참여했다. 우순실이 객원 보컬로 참여하여 노래한 <커텐을 젖히면>은 이 음반의 베스트 트랙이고, 이주원이 결혼한 후 처음 만든 곡이라 감상적이라는 <너와 내가 함께>, 따로 또 같이의 음악적인 성향이 바뀌었음을 드러내는 록 프레이즈가 실린 <별조차 잠든 하늘엔>도 좋은 곡들이다.(박준흠)

44. U & Me Blue Cry… Our Wanna Be Nation! (1996/송/LG미디어) [방준석(g, b, key, seq, v), 이승열(g, seq, v)]

노이즈가든의 데뷔 앨범과 함께 90년대 말을 대표하는 한국의 록 명반으로 기억될 수작이다. 전편에 녹아있는 외로움의 정서와 그 느낌을 담아내고 있는 리드보컬 방준석의 블루지한 보컬은 아주 매력적이며, 해외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한 뛰어난 연주력은 이 앨범의 자랑거리다. 간결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없어>와 건조한 느낌을 주는 <천국보다 낯선> 등으로 이어지는 앨범의 수록곡들은 외국의 어느 밴드 못지 않게 뛰어난 연주와 작곡을 자랑한다. 이 앨범에서의 옥의 티라면 어색한 한국어 작사실력인데, 부정확한 발음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의미가 불분명한 일부 가사들은 때로는 유치하다는 느낌을 준다. 한편, 이들의 데뷔 때부터 지적되었던 오리지널리티의 부재는 2집에서도 문제가 되는데, U2의 카피가 짙은 방준석의 보컬과 외국 여러 밴드들을 모방한 이들의 사운드는 유&미 블루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동시에 이 앨범을 진정한 의미의 명반으로 인정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하지만 국내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수준 높은 연주와 이국적인 스타일의 작곡, 편곡, 보컬로 이어지는 이들의 독보적인 면모는 실질적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측면에서 명반 으로서의 가치는 얼마든 찾아볼 수 있다. (김영대)

45. U & Me Blue Nothing’s Good Enough (1994/나이세스) [방준석(g, b, key, seq, v), 이승열(g, seq, v)]

1994년 등장한 이들의 데뷔 앨범은 평론가들의 주목을 받았지만 한국적인 감성과는 너무나 차이가 현격한, 어쩌면 처음부터 실패가 에정된 앨범이었다. 이름에서 드러나듯 블루스와 당시 서서히 부상하던 모던 록에 기반을 둔 두 기타리스트의 음악은 그러나 그렇게 묻혀 버리기엔 너무나 아까운, 시대를 앞서간 앨범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이들의 이 데뷔 앨범을 내었더라도 그처럼 외면당했을까? 보통 이런 질문은 “지금은 그렇지 않다”라는 답을 가정한 표현이겠지만 우울하게도 ‘그렇다’가 솔직한 대답일 것이다. 한국 대중음악이 세계적 흐름을 반드시 따라갈 이유는 없지만, 지금 대중음악이 가는 방향은 독창성과는 거리가 먼, 그야말로 벼랑끝을 향한 맹목적인 레밍의 행진일 뿐이다. 그 맹목적인 상업주의 행진 중에는 두 음악인이 피운 블루스 넘버 <꽃>의 소박하고 거친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올 리 만무하다. 맹목적으로 붕괴를 향해 마구 돌진하며 주위의 어떤 경고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국 경제와 한국대중음악은 어쩌면 그렇게도 닮은꼴인지! (신승렬)

46. 다섯손가락 1집 (1985/서울음반) [이두헌(g, v), 임형순(v), 최태완(key), 이우빈(b), 박강영(d)]


다섯손가락의 1집은 80년대 캠퍼스를 중심으로 한 록의 르네상스를 연상시키는 앨범 중의 하나다. 당시 백두산이나 부활, 시나위 같은 언더그라운드적 성격이 강한 밴드들과는 달리 다섯손가락의 음악은 스쿨밴드 특유의 풋풋함을 느끼게 한다. 또한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선율과 아름다운 가사는 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들의 귀에 어필하는 것들이다. 이 앨범에는 80년대에 10대와 20대를 보낸 이라면 누구든지 알고, 한 번쯤은 불러보았을 <새벽기차>,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과 같은 노래들이 실려 있다. 이 노래들은 10대들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멜로디와 가사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다섯손가락의 음악은 새로움이나 실험정신같은 것과는 약간 거리가 있고, 다섯손가락의 음악이 우리 나라의 음악에 어떠한 대안이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던 것은 아니다. 물론 음반을 이야기하는 데에 있어서 이러한 요소들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아름다운 가사와 멜로디만으로도 그들의 가치를 어느 정도는 인정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록이라는 음악 자체가 80%의 기존의 틀에 20%의 새로움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황정)

47. 전인권,허성욱 1979-1987 추억 들국화 “머리에 꽃을” (1987/서라벌레코드) [전인권(g, v), 허성욱(key, v)]

전인권의 대표작은 들국화 1집이 아니다. 들국화 1집에서 그는 <행진> 등을 부른, 뛰어난 보컬리스트였을 뿐이다. 들국화 1집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은 오히려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를 만든 조덕환이거나 뛰어난 세션을 보여준 최구희(기타)와 허성욱(키보드, 피아노)이라 해야 맞다. 이후 전인권은 1986년 어정쩡하게 들국화 2집에 참여한 이후 1987년에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이 음반을 발표한다. 그리고 허성욱과 같이 한 뛰어난 곡 작업으로 그가 이전에 “단지 들국화의 보컬리스트일 뿐”이란 인식을 불식시켰다. 이 음반을 통해 보여준 그의 작곡능력은 정말 80년대 뮤지션들 중에서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이는 다음해에 발표한 솔로 1집에서도 여실히 증명된다. 70년대 말부터 축적한 노래 부르기의 열망이 비로소 제대로 분출된 음반으로, <북소리>, <사랑한 후에>, <머리에 꽃을>, <어떤···(가을)>은 그의 여린 감수성을 느낄 수 있는 베스트 트랙들이다. 이 음반에 참여한 최구희와 함춘호의 연주 또한 ‘당대의 세션’이었다. (박준흠)

48. 한영애 불어오라 바람아 (1995/디지탈미디어)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양희은 이후 가장 중요한 여성 뮤지션으로, 90년대에는 장필순과 함께 독보적인 존재로 매김한다. 1977년 이정선, 이주호, 김영미와 같이한 포크 그룹 해바라기 1집으로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가수로서의 ‘인정’을 받은 것은 그 유명한 <건널 수 없는 강>이 담긴 1986년 1집에서부터였다. 그리고 이 ‘인정’은 ‘폭발적인지지’ 수준이었다. 원초적인 힘이 느껴지는 거친 음색의 이 곡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그 어느 누구도 보여준 적이 없는 놀라움이었고, “이렇게도 노래하는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이는 굳이 제니스 조플린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진정으로 ‘가수에게 있어서 노래 부르기의 본질’을 생각하게끔 했다. “여자가수란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통렬하게 날려 버린 그녀는 그래서 너무도 소중한 존재다. 그런 그녀가 우리 세션 역사의 한 장을 제시한 1988년 자신의 2집 <바라본다>와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한 1992년 3집에 이어 발표한 본작은 90년대 손꼽히는 명작이자 ‘여과된 정제미’를 보여주는 숨겨진 걸작이 되었다. “절망에서 무조건 달아나기엔 우리의 하루는 짧다는 것, 외로움에 한없이 부딪친다면 우리의 삶은 너무 길어지는 것”이란 <불어오라 바람아>, “일상 속에서 군중 속에 혼자 남겨져 외로울 때 날 위로하는 것은 너의 이름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란 <너의 이름>은 이 음반의 백미다. (박준흠)

49. 장필순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때 (1997/킹레코드)

장필순의 본 모습이 제대로 반영되기 시작한 것은 조동익이 음반 디렉터로 참여하기 시작한 1992년 3집 <이 도시는 언제나 외로워···>부터였다. <가난한 그대 가슴에>, <강남 어린이> 등이 실린 3집은 가사에 좀 더 치중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조동익의 참가로 지난 음반보다는 포크적인 느낌을 더 많이 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마스터피스인 본 앨범이 1997년에 나왔다. 사실 5집이 나오지 않았다면 장필순은 노래 잘하는 여자가수 정도로만 자리매김될 수도 있었다. 이 음반은 3집 이후 조동익과 같이 한 음악작업의 결과가 완벽하게 그 결실을 맺었음을 보여주었고, 조동익 밴드(조동익, 함춘호, 윤영배, 박용준, 김영석)의 세션은 조동익, 윤영배, 장필순이 공동으로 작업한 곡들에 너무도 역동적으로 매치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또한 이 음반에서 가장 놀랄만 한 점은 <그래!>, <넌 항상>, <사랑해 봐도>를 들어보면 알 수 있겠지만, 장필순의 곡 쓰기 작업이 완숙한 경지에 올랐다는 것이다. 한영애가 4집에서 보여준 것과 같이 그녀도 5집을 통해서 싱어 송 라이터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박준흠)

50. 사랑과 평화 1집 (1978/서라벌레코드) [최이철(g, v), 김명곤(key, v), 이근수(key), 김태흥(d), 사보(b)]

1978년 당시 세션 연주자들로서 실력을 인정받던 젊은 뮤지션들인 최이철(기타), 김명곤(키보드)을 중심으로 결성된 한국판 토토(ToTo)로 불려지던 이들은 ‘전문 세션 연주자들이 만든 밴드’라는 계보의 첫 번째 주자로서. 이후 봄·여름·가을·겨울, 야샤, 쿠바 등으로 이어진다. 그들의 명성에 걸맞게 <한동안 뜸 했었지>가 실린 이 음반을 발표할 당시는 ‘국내 최고의 연주그룹’이란 평이 지배적이었다. 80년대에도 각기 연주자와 편곡자로 이름을 드높인 김명곤과 최이철이 그룹의 운영을 주도했던 이들은 당시로서는 드물게 연주 자체에 천착했던 뮤지션들이었다. 이 음반에는 디스코풍으로 김명곤이 편곡한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와 베토벤의 <운명>이 실려있는데, 이는 당시로서는 ‘실험’이었다. 그리고 최이철의 마우스 튜브 연주가 뛰어난 <달빛>은 지금도 국내 대중 음악계에서 듣기 힘든 비범한 연주가 담긴 곡이다. (박준흠)

51. 김광석 다시 부르기 (1993/킹레코드)

90년대 초 소극장무대의 주역은 다름아닌 자그마한 키에(하지만 목청은 누구 못지 않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짓던 김광석이었다(공연을 마친 후 자기 딸의 돌이라며 떡을 나누어주며 지었던 그의 미소···). 그가 3집과 4집 사이 발표한 비정규 앨범(베스트 앨범의 성격도 띄며)인 <다시 부리기 1>에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과 동물원 시절의 곡, 솔로 시절의 곡, 그리고 미발표곡들이 원곡과는 다른 편곡으로 실려있다(일부는 라이브 버전으로). 이 앨범에는 최백호의 <입영전야> 이후 입대하는 친구에게 불러주는 노래이자 훈련소에서 이등병도 되지 못한 훈련병들의 집단눈물사태를 유발하곤 하는 <이등병의 편지>와 아직 뜨기 이전의 안치환과 공연할 때 듀엣으로 부르곤 했던 <나무>, 대학가에서 오랫동안 불리었던 <그루터기>, <광야에서> 등의 새로운 곡과 <흐린 가을에 편지를 써>, <거리에서> 등의 동물원 시절의 곡이 단순한 악기 구성의 간결한 편곡으로 실려 있다. (김민규)

52. 산울림 3집 (1978/서라벌레코드) [김창완(g, v), 김창훈(b, v), 김창익(d)]

우리 나라에 신중현과 엽전들이 록이라는 형식을 도입했다는 이유 때문에 산울림에게 ‘한국 록의 선각자’라는 명칭을 부여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신중현이 록의 원형질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산울림의 3형제들은 끝없는 상상력과 자유로운 정신으로 이미 20년 전에 한국이라는 땅에서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던 싸이키델릭, 펑크, 메틀 등 갖가지 음악의 형식들을 선보였다. 엘리트 코스를 거친 이들 3형제의 우연한 시도인 <아니 벌써>로 당시 40만 장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하며 대중음악계를 향해 포문을 연 산울림은 2집에서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에서 변화, 혹은 진화의 모습을 예감케 하더니 3집에서는 한 걸음이 아닌 훌쩍 건너뛴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론 이러한 급격한 변화는 철저한 상업적 패배로 끝났지만 3집에서 보여준 산울림의 모습은 자신들의 색깔을 가지면서 끝없는 실험을 한다는, 어쩌면 모든 음악인들의 지향이라고도 할 수 있는 화두에 대한 훌륭한 전범으로 기억된다. 이것이 3집이 산울림의 작품 중 최고라고 할 수는 없을지 모르나 최선으로 기억되는 이유이며, 그들의 목에 감히 ‘한국 록의 선각자’라는 화환을 걸어주는 이유다. (황정)

53. 동서남북 1집 (1980/서라벌레코드) [박호준(g), 이태열(b), 김득권(d), 이동훈(key), 김광민(key), 김준응(v)]

1980년에 발매되었다가 1988년에 재발매되고 1988년 시완에서 또 다시 재발매되었으나 인구에 회자되던 그 전설성만큼 관심받지 못하는 앨범이다. 한동안 <나비>라는 한 곡과 그 음반의 희귀성 때문에 마치 전설 속의 밴드라기보다는 프로그레시브의 가능성을 가졌던 밴드였다. 타이틀(은 아니었겠지만)격인 <하나가 되어요>라는 곡은 보통 가요에 버금갈 뿐이지만 전체적으로 풋풋하면서 세련됐더라면 그럴 수도 있는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어쨌든 <나비>라는 프로그레시브적 접근을 취한 곡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재발매로 인해 이들의 정체는 밝혀졌겠지만 그 촌스러운 재킷이 구매욕을 상실시키는 것도 사실이다. 특이한 사항을 들자면 양병집이 프로듀서를 했다는 것과 일요예술무대를 진행하는 김광민이 있었다는 것. (한유선)

54. 듀스 DEUXISM (1993/지구레코드) [이현도(v, prog), 김성재(v)]

“우리들의 어린 시절 이미 지나갔고, 어른이란 이름으로 힘든 직장 갖고, 생활하면서 이미 뽀얀 얼굴은 갔고, 그런 걸 같고 고생이라고 말하고, 고지식한 생각으로 남을 무시하고, 동심을 가진 어른들을 이상하다하고, 동심을 가진 어른들을 이상하다하고, 전자게임, 프라모델, 만활 싫어하고, 그게 왜 재미있는지 이해를 못하고, 그런 사람을 보며 나는 답답하고, 얼키고, 설키고, 꼬이고, 막히고./어렵게 생각하면 힘든 세상이지만 행복은 그리 먼 게 아니야. 작은 기쁨을 느낄 수 있다면 이미 넌 행복한 거야”(<GO! Go!> with H2O)는 랩에서 라임을 따지는 이현도의 관심사를 보여준 명곡이다. 그리고 데뷔 음반과 같은 해에 발표된 이 음반은 그들의 진일보한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또한 이런 발전적인 모습은 1995년 Force DEUX 때까지 계속적으로 보여주었다. 진정으로 90년대 한국 대중음악에서 스스로가 음악감독이 되어서 최상의 음반들을 계속적으로 내놓은 경우는 서태지와 이현도를 제외하고는 없었다. 다른 점은 서태지의 음반은 나올 때마다 열광적인 미디어의 추적으로 그의 작업결과물이 낱낱이 해부되었지만, 이현도와 듀스는 그냥 댄스 뮤지션이었다는 것뿐. 그러나 장난 아닌 밀도를 가진 이현도의 음악에서 우리는 천재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이 음반은 그러한 시발점이었다. (박준흠)

55. 시나위 1집 (1986/서라벌레코드) [신대철(g), 임재범(v), 박영배(b), 강종수(d), 김형준(key)]

한국에서의 본격적인 헤비메틀의 출발은 참으로 두터운 돛을 달고 시작되었다. 바로 이 앨범 때문이다. ‘최초’라는 수식어가 미안할 정도로 이들의 첫 앨범은 정도를 달린다. 디스토션이 걸린 기타 사운드가 전체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그것의 운용방식이 (전통적인 헤비메틀의 관습적인) ‘리프’와 ‘솔로’로 구성되며 고음역이 강조되는 보컬의 멜로디 라인은 그것을 구현한 것을 넘어 세련된 창작의 경지에 이르렀다. <크게 라디오를 켜고>는 앞서 말한 대로 헤비메틀이 지녀야 할 이디엄을 모두 갖춰 제대로 이 장르를 소개할 수 있는 차원을 뛰어넘는 존재감을 지닌 넘버다. <아틀란티스의 굼>과 같은 곡은 자칫 장황해지기 쉬운 이 장르의 스타일을 잘 정리해 낸 수작이다. 보컬을 맡지 않은 기타리스트가 프론트맨이 되는 록밴드의 규율을 잘 지켜낸 것도 분명 주목해야 할 점이다. 뿐만 아니라 이 앨범이 ‘임재범 버전’과 ‘김종서 버전’의 두 가지 저번이 존재하는 것은 콜렉터의 아이템으로 더욱 효과만점인 부분이기도 하다. (조원희)

56. 안치환 Confession (1993/킹레코드)

민중가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노래운동가들이 합법음반을 발표하고 또한 그 음반들이 어느 정도 상업적 수확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은 매우 드물고도 힘든 일이다. 집회를 위한 선동가의 성격이 짙었던 80년대 민중가요들이 이제는 활동공간이 한계를 벗어나 햇볕 아래로 나오기 위해서는 그것들이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야 함과 동시에 상업적인 멜로디와의 타협이 필요하다. 안치환은 이러한 경우의 성공적인 사례인 동시에 민중가요를 ‘구호’가 아닌 ‘노래’로서의 관점에서 한 단계 끌어올린 가수다. 특히 그의 3번째 작업인 은 류시화, 정호승, 나희덕 그리고 김남주의 시와 언제나 현실의 문제를 직유가 아닌 은유로서 다루어왔던 안치환의 가사 쓰기로 인해 멜로디의 서정성에 결코 뒤지지 않는 가사미학을 선보이고 있다. 대학가만을 맴돌던 민중가요가 이제는 그 지지기반을 넓혀가기 위한 대안으로서 제시되고 있는 그의 노래들은 그의 개인적인 노래에 대한 진화와 함께 이 한 장의 음반을 시작으로 한 그의 뒤이은 후속작들의 곳곳에서 그 풀뿌리 같은 끈질긴 생명력을 드러내고 있다. 즉, 은 90년대 제도권 진보성향의 노래가 울리는 제도권 시장에서의 첫 번째 자립선언의 결과물이다. (황정)

57. 삐삐 롱 스타킹 원웨이 티켓 (1997/동아기획) [박현준(g, prog), 달파란(b, prog), 고구마(v)]

처음부터 삐삐밴드는 대중친화적 요소를 많이 첨가한 팬시상품적 타이틀이었다. 그러나 2번째 앨범을 내면서 그보다는 그들의 ‘음악적 의도’에 더욱 노력을 쏟았으며 결국 이 앨범에선 밴드의 이름을 바꾸면서까지 그들의 변모된 모습을 세상에 알렸다. 그들의 ‘카메라 모욕사건’만 아니었더라면 차트에서의 성적이 매우 높았을 만했던 <바보버스>는 한국 대중음악의 ‘패턴’을 살펴볼 때 모욕사건 자체보다 더욱 <사건>에 가까운 음악적 파격을 보였으며, 이전의 상업적 성공에 조금도 경도되지 않은 듯한 그들의 태도는 <조금만 더>와 <계단> 등에서 더욱 드러난다. 이전 앨범들에서의 특징이었던 ‘자의식 과잉’의 가사들이나 ‘지나친 장난기’가 그대로 살아 숨쉬는 가운데, <12시>의 서늘하며 날카로운 서정성은 이들의 앨범을 더욱 완벽하게 이끌고 있다. 특정한 장르에 이끌리지 않는 ‘삐삐’ 프로젝트들의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나 있으며 동시에 앨범 제목처럼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는’ 편도승차권이기도 한 앨범이다. (조원희)

58. 이정선 30대 (1985/한국음반)

이정선은 초기에는 해바라기 등의 활동을 통해 모던 포크풍의 음악적 성향을 보이다가 점점 블루스적 경향의 음악을 하기 시작했고, 솔로 활동과 신촌블루스의 활동을 통해 자기만의 블루스 기타 플레이를 선보였던 음악인이다. 그의 이름으로 나온 음반 중에서 초기작들은 포크 음악의 색이 짙고 후반기에 작품들은 점차 블루스적 체취가 나는데, <30대>는 이러한 블루스적 완성미가 최고도에 달한 음반이다. 그의 뛰어난 어쿠스틱 기타 솜씨가 느껴지는 <우연히>, 한영애가 불러 더 유명해진 <건널 수 없는 강>, 그의 특유의 블루지한 느낌이 나는 <울지 않는 소녀>, <바닷가에 선들>등의 수록곡들은 교본이 될 정도로 일가견을 이룬 그의 기타가 빛을 발하는 곡이다. 그는 블루스의 기본 12마디 코드 진행에서 약간의 변형(리듬에 변형을 준다든지 등등)으로 그만의 독특한 느낌을 준다. 여기에 바로 그의 음악의 매력이 담겨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정선은 해바라기, 신촌블루스에서의 활동을 통해 블루스 기타를 가장 독창적으로 가요에 접목 함으로써 다양한 가요의 장르가 공존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했다. (황정)

59. 김광석 4집 (1994/킹레코드)

언젠가 대학교의 콘서트에서 그가 당시 방송순위 1~2위를 다투던 <사랑했지만>을 불러달라는 팬들의 아우성을 거절한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는 무척 난감해 하며 “그 곡은 잘못 불렀다고 생각해요. 제가 여러분에게 들려주고 싶은 음악은 그런 게 아닙니다”라며 그 원성(?)을 끝내 외면했다. 그는 이미 <나의 노래>를 발표한 3집에서부터 자신의 음악에 대한 자의식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모두가 투쟁하던 80년대에 연가를 부르던 (그리하여 노·찾·사 출신의 변절이라는 평가를 듣던) 그는 이제 더 이상 연가를 부르는 것이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는 90년대에 오히려 <일어나>, <자유롭게>가 담긴 이 앨범을 발표했지만, 사람들은 그 곡들보다 <사랑했지만>으로 규정되는 그의 예전 모습들을 더 원하고 있었다. 세상은 너무 빨리 바뀌어 있었다. 많은 진지한 스타들이 그러하듯 그는 자신의 이미지를 박제시키려는 팬들의 요구에 괴로워했고, 그들이 밟은 전철을 따라 요절로 자신의 생을 마친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자살한 한 아이돌 스타에게 초점을 맞춘 언론과 대중은 죽은 그를 두 번 외면했다. 커트 코베인을 매년 추모하지만 그의 죽음을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음악인들, 유재하 트리뷰트는 만들어도 김광석 트리뷰트는 만들지 않는 음악인들도 그 공범에 속할지 모른다. (신승렬)

60. VARIOUS ARTISTS A Tribute To 신중현 (1997/서울음반) [강산에, 시나위, 윤도현밴드, 이중산, 봄·여름·가을·겨울, 퀘스천스, 이은미,복숭아,사랑과 평화, 김광민, 정원영·한상원, 한영애, 김목경, 논 피그]

신중현은 60·70년대의 척박한 대중음악계에서 최초로 아티스트적 모습을 보여주었고, 사이키델릭 록, 소울, 브래스 록, 하드 록 등을 자신의 다양한 음악세계에 흡수하여 ‘신중현의 음악’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는 산울림 이전 ‘한국 록’과 동격의 의미였고, 말 그대로 그는 한국 록의 역사이자 산증인이 되었다. 또한 ‘신중현 사단’을 이끌었던 장본인으로서 자신의 보컬 역량에 문제가 있어서였겠지만 당대의 개성 있는 보컬리스트(박인수, 김정미, 장현 등)를 발굴하기도 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라이브와 그가 발굴한 가수들의 음반에서 보여준 연주만큼 뛰어난 자신의 음반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본 음반은 그의 노래들이 새롭게 조명되는 시점에서 그에게 영향받은 뮤지션들이 그의 대표곡들을 리메이크하여 2장의 CD에 담은 컴필레이션 앨범이다. 봄·여름·가을·겨울이 부른 <미련>, 이은미가 부른 <봄비>, 정원영·한상원이 연주한 <석양> 그리고 참가자를 밝히지 않은 <미인>이 압권인 이 음반은 그 자신이 부른 노래보다는 다른 가수들이 부른 그의 노래가 훨씬 빛남을 볼 수가 있다.(이는 밥 딜런 데뷔 30주년 기념공연 음반을 들었을 때의 느낌과 같다) (박준흠)

61. 삐삐밴드 문화혁명 (1995/송/디지털 미디어) [박현준(g, key, d), 강기영(b, key, g), 이윤정(v)]
안녕하세요, 삐삐밴드입니다. 그렇지요. 저희 중 현준이를 빼곤 지조 없이 지금 테크노 한다고 설치고 다지죠. 윤정이는 음악도 모르는 게 소리만 빽빽댄다고 욕도 먹었죠. “딸기가 좋아/우리집 강아지는 멍멍멍” 따위 가사로 신성한 록을 모독한다고 어쩌구저쩌구 하질 않나, TV에서 개그 한다고 욕하질 않나 또 나중에는 저희가 TV에서 반항했다고 또 뭐라고 하질 않나··· 참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더라구요. 한국에서 음악 하려먼 한 가지만 들입다 파야 하구, TV는 절대 나오지 말구, 보컬은 반드시 보컬 학원 수료한 언더그라운드 출신을 쓰고, 가사는 저항성 넘치게 진지하게 쓰고··· 이렇게 해야 욕 안 먹고 음악 할 수 있어요. 근데 저희가 먼저 몸담았던 시나위 출신 어느 후배 음악인은 이 반대로 해도 욕 별로 안 먹고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 참, 알다가도 모를 게 대중이고 매니아에요. 아, 또 이런 말하면 음악 듣는 이들을 얕본다고 욕먹겠죠? 그만할게요. 잠깐, 그렇지만 이 한마디는 꼭 해야 될 것 같아서요. 그렇게 엄숙한 표정하지 말고 그냥 들어요. “딸기가 조오아아~!” (신승렬)

62. 조동익 동경 (1994/킹레코드)

조동익의 노래를 들으면 마치 공선옥의 소설 <시절들>을 읽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지금은 성인이 되어 버린 70년을 전후로 태어난 세대들이 느낄 수 있는 개발과 향수가 공존하던 거리에서의 유년의 기억과 때로는 술에 취한 모습으로 그때를 ‘동경’하는, 어쩌면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는 성년의 모습은 조동익의 노래 곳곳에 상쾌한 내음의 송진처럼 배어 있다. 이병우와 함께 한 어떤날의 2장의 음반 이후 오랜 침묵 끝에 자신의 목소리를 조용히 들려주는 조동익의 첫 음반은 80~90년대를 아우르는 최고의 베이스 세션맨과 걸출한 작/편곡자로서의 그의 모습이기 이전에 개인적인 추억담들을 타인과 공유하기 위한 수단으로 음악이라는 매개를 택한 한 음유시인의 조용한, 그러나 뚜렷한 독백이다. 그의 노래 속 주옥같은 시어들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적절한 휴식을 두면서 연주되는 그와 동료들의 연주와 함께 90년대 최고의 자기완성적인 음반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한여름 뙤약볕에서 뛰어놀다 들어와 찬물에 밥을 팍팍 말아 먹고는 다시 뛰어나가 놀던 유년시절의 기억을 ‘동경’하게 하는 조동익의 음악은 자신의 감정을 자신만의 언어로 말하는 무르익은 음유시인의 그것에 다름 아니다. (황정)

63. 봄·여름·가을·겨울 나의 아름다운 노래가 당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면 (1989/서라벌레코드)

자신들만의 색을 확고히 지키면서 언제나 새로운 사운드적 실험을 하는 그룹은 과연 몇 팀이나 될까. 리더 김종진의 독특하면서 매력적인 보컬, 화려한 세션진을 통한 뛰어난 연주력으로 대표되는, 80년대 최고의 그룹 중 하나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봄·여름·가을·겨울의 최고의 역작인 본 2집은 연주력과 사운드적인 구현에 있어서 아직도 감히 접근할 엄두를 내기 힘든 앨범이다. 그룹 사랑과 평화와 함께 가장 독특하고 맛깔스러운 연주를 해내는 팀으로 기억되는 김종진/전태관은 놀라움을 안겨준 1집에 이어 2집에서 그 창조적인 연주력의 절정을 선보인다. 송홍섭, 한충완 등으로 이어지는 세션도 세션이지만 <어떤이의 꿈>, <못다한 내 마음을>에서 느껴지는 리더 김종진의 유니크한 기타연주는 카리스마적인 그의 보컬만큼이나 중요도를 가진다. 치밀하게 계획되어지고, 앨범에 사용되는 하나하나의 테크닉이 정교하게 연구되어지고, 사운드적으로 철저하게 실험되어져 탄생된 듯한 느낌을 주는 본 앨범은 80년대를 대표하는 스튜디오 세션의 최고작이다. (김영대)

64. 마그마 1집 (1981/힛트레코드) [조하문(g, v), 김광현(g), 문영식(d)]

마그마는 조하문(베이스, 보컬), 김광현(기타), 문영식(드럼)으로 구성된 하드 록 그룹이었고 박두진의 시를 개시한 <해야>로 1980년 MBC 대학가요제에 참여하여 은상을 받았다. 당시 대학가요제에 나온 록 그룹들 중에서 마그마와 같이 헤비한 음악을 했던 그룹은 없었고, 이후에도 없었다. <아름다운 곳>, <잊혀진 사랑> 같은 헤비한 기타 연주가 담긴 곡들은 80년대 초반에는 작은거인 2집 이외에서는 들을 수 없었다. 만약 국내에서 헤비한 록 사운드를 듣고 싶었다면 안타깝지만 1986년 시나위 1집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심야라디오의 리퀘스트곡이기도 했던 <잊혀진 사랑>의 원제는 <4차원의 세계>였는데 심의에 걸림으로써 <잊혀진 사람>으로 개작되었고, 앨범 프린트 미스로 <잊혀진 사랑>이 되었다고 한다. 뛰어난 록 보컬리스트로도 평가받았던 조하문은 이후 솔로로 전향하여 록 발라드 지향의 가수가 되었다. (박준흠)

65. 김수철 1집 (1983/신세계음향)

당대의 히트곡 <못다 핀 꽃 한송이>로 시작하여 <정녕 그대를>, <별리>를 지나 <내일>까지 일련의 애상적 발라드는 음반 제작자들의 신주단지, 애절한 이별 노래의 저주받을 ‘국내 취향’의 전범이 될 법하다. 물론 작은거인에서 하드 록의 한 경지에 올라섰던 김수철의 작품들은 유통기한 3개월짜리 대량생산 복제품들과는 견줄 수 없는 품위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전통적인 애이불상(슬프되 가슴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 즉 감상적이지 않다)의 미덕과는 조금 다른 의미에서 슬픔의 승화, 상처를 스스로 핥아 치료하는 짐승의 그것과 비슷한 외로운 존재의 확인이다. 어쿠스틱 기타와 현악 세션이 곧 일렉트릭 사운드로 전환되는 <못다 핀 꽃 한 송이>의 드라마틱한 곡 구성은 가요의 틀속에서도 돋보이고, 작은거인 2집에서 옮겨 온 <별리>의 정조는 멀리는 <가시리>에서 가깝게는 소월의 <진달래꽃>까지 면면히 이어져 온 이별가 전통 속에 고유한 정한을 계승했다 할 만하다. 이윽고 앨범 후반부의 <내일>은 선명한 기타 반주를 곁들여 담담한 체념의 어조로 홀로 가야 할 ‘멀고도 먼 방랑길’, 한 뮤지션의 앞으로의 여정을 예비하고 있다. (조성희)

66. 정태춘 시인의 마을 (1978/서라벌레코드)

고은의 작품을 좋아하며 자신의 외모에 대한 열등감과 인생의 허무함에 싸여 있던 한 시골소년이 1978년 군을 제대하며 그간 만든 노래들을 발표한 것이 본작이다. 또한 앞으로 끊어지지 않을 공윤과의 인연을 맺어준 것도 본작이다. <시인의 마을>의 가사가 시작과 관련이 없고 가사에 방황, 불건전한 요소가 짙어 대중가요로 부적격하다는 판정을 받고 전면 개사되었고, <사랑하고 싶소>도 내용이 지나치게 방황을 강조하고 있다는 이유로 개사되어 발표되었다. 이렇게 이 앨범은 정태춘 자신의 자아에 대한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채 방황과 허무로 일관하며 계속적인 정체 모를 것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정서를 드러내고 있다. 떠나고자 하면서도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망설이고 방황하는 빈 가슴을 품은 채 떠 돌아다니는 시인의 모습을 공윤의 지적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정태춘이 만들어낸 자신이 느끼는 것에 대한 솔직한 그 가사가 적절히 베어 있는 가락들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냈다. (한유선)

67. 양희은 1991 (1995/킹레코드)

상투적인 표현을 눈감아준다면,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혹은 언니), 버거운 역사의 등짐을 저 모퉁이쯤 살며시 내려놓고 이제 조용조용 말을 걸어 오는 양희은을 이 말처럼 적절하게 형용한 것이 없다. 그이만큼 작곡자 복[혹은 화?]이 넘쳤던 싱어도 많지 않을 터인데, <아침이슬>의 김민기, <한계령>, <찔레꽃 피면>의 하덕규 이후 여기서 파트너로 맞은 이는 막내동생뻘쯤 될 듯한 이병우이다. 언제나 청량하게 곧게 뻗어나가기만 할 것 같던 양희은의 목소리에 어느새 세월의 연륜인 듯 음영이 드리워졌고 그에 맞춰 덤덤한 회한과 호들갑스럽지 않은 달관을 담은 곡들 안에 시종 잔잔하게 뒷받침하는 기타가 호흡을 맞춘다. 그래도 좀 굴곡이 있다 싶은 <가을아침>에서 그려나가는 어느 가족의 아침정경은 정말이지 정겹기 그지없다. 쓸쓸하도록 아름다운 풍경이다. (조성희)

68. 달파란 휘파람 별 (1998/펌프/도레미레코드) [달파란(prog)]

한국 대중음악계처럼 트렌드에 민감한 곳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게다가 이 곳에서의 트렌드의 공통점은 그것을 ‘제대로’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본격 적이고 능란하게 대중의 취향에 영합하고, 또한 변형시킨다는 것에 있다. 이러한 트렌드의 특성에 결코 부합하지 않는 ‘테크노’ 앨범이 바로 이것이다. 테크노라는 장르가 가진 특성(샘플과 루프, 아날로그 신서사이저적인 음원과 아르페지오, 그 외에도 몇 백가지가 될지 모르는)들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달파란/강기영의 것으로 ‘자기화’했으며, 가장 ‘한국적인 개성’을 지닌 이박사의 인용이나 낭만적이며 신비주의적인 ‘컨셉트’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글로벌한 특성을 지닌, 정말 어느 곳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만한 앨범이 이것이다. 이 앨범이 ‘상업적으로 실패’했다는 것은 바로 한국의 ‘트렌드’에 대한 증거물로서의 자격을 획득하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음악철학을 지녔지만 그것을 구체화하여 앨범으로 내놓기는 힘든 일이다. 달파란/강기영의 ‘테크노 철학’을 그대로 창작해낸 실천주의적 앨범이다. (조원희)

69. 패닉 Panic (1995/신촌뮤직/아세아레코드) [이적(v,g, key, prog), 김진표(v)]

그야말로 ‘New Kids On The Block’ 동네에 나타난 새로운 아이들. 그들의 정체는 중산층에서 (겉보기에) 별 탈 없이 잘 자란 요즘 애들이지만, 한편으론 ‘또 하나의 문화’라는 대안문화를 추구하는 진보집단의 2세대로서 사회체제에 대한 분석비판력을 갖춘 세대였다. TV 속의 다소 어설픈 라이브로 혹사당해 최초의 신선한 울림을 잃어 버리긴 했지만 <달팽이>에서 표현된 작고 뭉클하고 꼬물거리는 것에 대한 애정은 새로웠고, 경쾌한 선율 위에 획일적인 사회에 대한 항변을 담은 <왼손잡이>가 모든 삐딱한 성향을 가진 이들의 은근한 동조를 모았던 반면, 이들의 지향은 <다시 처음부터 다시>의 걸러지지 않은 독설과 직설적인 공격성에 집약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곡 끝머리에 살짝 비춰진 젊은이다운 웃음기는 <더>의 소름끼치는 파괴적 비전의 확대심화로 일관한 그들의 2집밑에서는 더 이상 접할 수 없으며, 이적과 김동율의 조인트 앨범 카니발을 보면, “아무것도 망치지 않는다”는 가사가 의도된 아이러니가 아니라 이적의 진심이 아니었나 의심하게 된다. (조성희)

70. 갱톨릭 A.R.I.C (1998/강아지 문화 예술) [김도영(v, key), 임태형(v, key)]

굳건하게 ‘가요 톱텐’의 한 자리를 차지하던 ‘뽕짝’의 몰락과 댄스 음악의 주류장악이라는 전광석화처럼 벌어진 이 사건은 아직도 흑인음악 (랩, R&B)을 제 나름 대로 (또는 멋대로) 차용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하지만 거리의 아이들이 ‘크루(crew)’를 형성하고 자신들의 문화를 스스로 창출하는 전례 없는 일이 벌어질 것 이라는 기대는 아주 근거없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클럽 밴드들 틈새에서 마이크와 턴테이블을 무기로 랩을 지껄이는 랩퍼들과 포터블을 배경으로 춤을 추는 댄서들의 시도는 (미약하나마) 아직 진행형이다. 강아지 문화/예술의 옴니버스 앨범 에 <변기속 세상>으로 참여했던 갱톨릭은 자신과 주변에 대해 투덜거리며 ‘또 다른 혁명’을 꿈꾸며 ‘Another Revolution Is Climbing’이라는 어마어마한 타이틀의 데뷔 앨범을 발표했다. ‘뽕’ 멜로디 틈새에서 고생하는 랩을 본연의 위치에 놓으려는 이들의 시도는 아직 가능성의 영역일 수는 있어도 치기어리지는않았다. 그리고 현재 갱톨릭에 이어 함께 공연하던 가리온, Da Crew등 랩 그룹의 앨범이 준비중이다. (김민규)

71. 카르스마 1집 (1988/서라벌레코드) [이근형(g), 김종서(v), 김영진(b), 김민기(d)]

1983년 무당은 자신들의 2집에 담긴 <그 길을 따라>에서 헤비메틀의 모양새를 갖추었다. 그리고 1986년 시나위는 최초의 헤비메틀 히트 싱글이기도 한 <크게 라디오를 켜고>가 담긴 헤비메틀 음반을 만들었다. 이후 국내에서는 비록 언더그라운드에서나마 헤비메틀 붐이 일어났다. 카리스마의 본작은 시나위 데뷔부터 불기 시작한 국내 헤비메틀의 붐을 타고 시기적으로 마땅히 나왔어야 할 만한 완성도 있는 메틀 음반이다. 여기서는 당시 절정에 달했던 이근형의 연주를 들을 수 있고, 이는 시나위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김종서, 김민기, 김영진이 드디어 카리스마 참가시에는 역량있는 뮤지션들로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물이다. 90년대 변신을 한 김종서도 이근형과 공동 작사/작곡작업을 한 이 음반에서 자신의 음악작업경력 중 최고의 역량을 드러내고, , <저 산너머>에서의 이근형의 기타 연주는 필면에서 당대 최고임을 보여준다. 이들은 80년대 헤비메틀 역사에서의 슈퍼 세션 밴드이고, 미스테리와는 달리 명성만큼의 완성도를 음반에 담아냈다. (박준흠)

72. 한대수 무한대 (1984/신세계음향)

황천길을 허위적허위적 올라가는 사람이 남겨놓은 듯한 고무신이 걸린 철조망 사진은 한대수라는 냉소와 허무의식에 사로잡힌 듯한 한 가수의 초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70년대 한국 모던 포크의 역사에서 특유의 냉소와 표현의 모호성으로 또 다른 세계를 보여주었던 한대수의 자화상은 이렇듯 타인에게 이해받기를 원하지 않으며 또한 쉽게 접근을 허락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14년이란 긴 쉼표를 마치고 80년대의 마지막에 내놓은 또 하나의 자화상은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언어는 더욱 더 은유로 일관하고 그의 냉소의 대상은 점점 더 모호해졌다. 이는 모순으로 가득 찬 현실이 그에게 가했던 형벌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자신의 기질탓으로 보인다. 즉, 그는 타고난 니힐리스트인 동시에 상징주의자인 것이다. <무한대>에서 한대수는 언어추상화의 극치를 보여준다. 사실 우리 가요에서 이만큼 자의적인 가사 쓰기가 시도되기는 힘들고 또한 그러한 시도들도 많지 않았다. 흔히 거론되는 화려한 세션과 록적인 시도 및 추상화된 가사 미학은 80년대를 마감하는 해에 나온 무한대가 마땅히 평가받아야 할 부분이다. (황정)

73. 안치환 4집 (1995/킹레코드)

갑자기 바뀌어 버린 시대는 누구에게나 혼란스러웠다. 안치환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광야에서>의 비장미는 더 이상은 통하지 않는 시대, 그는 대중적인 서정성과 이제까지 그의 음악의 기반인 건강한 비판의식을 접목하기 위해 애써보았지만 형식이 바뀌지 않은 채 내용만을 바꾼 어색함은 2집까지 계속된다. 수없는 대중과의 만남을 통해 그는 새로운 형식, ‘록’이 자신이 바라는 대중성과 비판의식의 교점이라는 것을 읽어낸다. 그리하여 3집의 모색기를 거쳐 마침내 피어난 4집의 ‘록’은 이 음반을 그의 최고작이자 90년대 우리 대중음악의 소중한 성과로 자리매김하게 만든다. 이 음반을 <내가 만일>로만 기억하고 있는 안치환의 팬, 음반이 아닌 그의 생짜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는 안치환의 팬은 그를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니다. 관객과 같이 부르는 <당당하게>의 거친 목소리가 주는 카타르시스는 그 수많은 민중음악인들이 흔적도 없이 스러져간 90년대에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힘이다. (신승렬)

74. 김현식 5집 (1990/서라벌레코드)

당시 김현식의 고통스러운 내면이 담긴 ‘어두운’ 곡들로 점철된 이 앨범은 그의 음악여정의 완성적인 성격을 갖는다. 1980년 <봄·여름·가을·겨울>이 담긴 데뷔 음반을 발표한 이래 이전 4집까지는 각기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을 추구했던 음반들이었다. 1집에서의 훵키한 <봄·여름·가을·겨울>과 포크적인 <당신의 모습>, 2집에서의 일렉트릭 블루스 록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와 슬로우 록 <어둠 그 별빛>, 3집에서의 퓨전 재즈 취향의 <쓸쓸한 오후>와 세션의 진수를 보여주는 <비오는 어느 저녁>, 4집에서의 애상적인 <언제나 그대 내 곁에>와 <기다리겠소>는 점전적으로 발전하는 그의 음악세계를 보여주는 단면들 이었다. 하지만 이 음반에서는 ‘새로운 스타일’이니 ‘음악적인 발전’이니 하는 잣대가 어울리지 않고, 그러한 얘기를 거론할 성질의 음반도 아니다. <향기 없는 꽃>, <넋두리> 단 두 곡만 들어도 느낄 수 있는 그가 짊어진 삶의 무게는 무섭도록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여겨지는데, 이는 단지 노래를 만들기(꾸미기) 위해 만든 가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그 거리 그 벤치>, <거울이 되어> 등 최상의 트랙들이 실려있고, 박청귀의 세션작들 중에서도 1988년 한영애의 <바라본다>와 함께 가장 빛나는 작품이다. (박준흠)

75. 11월 1집 (1990/서울음반) [김효국(key), 장재환(g), 조준형(g), 김영태(b), 박기형(d)]

11월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하늘바다가 언급되어야 한다. 1989년 <마네킹의 하루>, <거울 속의 얼굴> 등이 실린 데뷔 앨범을 발표했던 하늘바다 <장재환, 김영태>는 (굳이 프로그레시브란 형용사를 동원할 필요 없이) 70년대 클래식 록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시도했던 이들이다. 하늘바다의 이른 좌초는 (단명한 밴드 대부분이 그렇듯이) 보다 명확한 자신의 색을 드러냈으면 하는 여운을 남겼다. 이듬해 이 앨범에 세션으로 참여했던 하몬드 오르간의 김효국과 믿음·소망· 사랑의 조준형(g),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출신의 박기형(d) 등이 장재환, 김영태와 함께 결성한 11월은 하늘바다보다 파퓰러한 사운드를 선보였다. 메인 보컬없이 자신이 만든 곡의 보컬을 스스로 맡은 이 앨범에는 하늘바다 1집에 실렸던 <거울 속의 거울>, <머물고 싶은 순간>이 다시 실렸고, 방송을 탄 <착각> 외에 리드미컬한 곡 전개를 보이는 <내게 마지막으로 남은 것>과 연주곡 <11월의 테미>가 수록되었다. (김민규)

76. 정태춘 아! 대한민국 (1990/삶의 문화/한국음반)

1991년 ‘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정태춘은 불법 음반을 냈다. 90년대 정태춘이라는 가수를 대중들에게 가장 드러나게 했던 공연윤리 심의위원회와 한 가수의 공식적인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본작<아! 대한민국>이 바로 그 시발점이다. 이 앨범에는 이전까지 그를 그렇게 붙잡고 늘어 지던 심의에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직설적인 가사들과 우리 전통악기들을 사용하여 (북, 꽹가리, 태평소) 뽑아낸 그의 의지를 뒷받침하는 강한 소리들이 이전까지의 시도와는 다른 차원에서 완전히 그 자세를 확립하고 있다. <일어나라 열사여>, <황톳길> 외에도 <그대 행복한가>와 <우리들 세상>을 통한 질문과 대답을 들을 수 있으며 이전까지 우리 고유의 음악을 옭아매던 한의 정서에서 탈피하여 자신의 분노와 저항을 실은 새로운 국악의 소리를 만들어냈다. 공윤에 대항하는 표현의 자유를 드러낸 본작으로 정태춘은 이전의 저항적인 혹은 서정적인 포크 가수에서 새로운 위치를 갖게 된다. (한유선)

77. 전인권 1집 (1988/서라벌레코드) [파랑새 : 전인권(g, v), 김효국(key), 오승은(b), 박기형(d)]

1985년 들국화 데뷔 음반은 80년대 말 국내 대중음악의 르네상스기를 연 기념비적인 음반이었고, 들국화는 당시 모든 사람들이 나오기를 꿈꿨던 그룹이었다. 우리말로 된 록 음반으로서 국지적인 느낌에서 탈피한 이 음반은 따로 또 같이 이후에 80년대 초반부터 일부 젊은 뮤지션들이 자신들 음악적 정체성 확보의 일환으로 행했던 ‘독자적으로 음악하기’의 저변이 확보되었음을 알리는 상징물이었다. 이 들국화의 보컬 리스트로서 카리스마적 보컬을 선보인 전인권은 사실은 들국화 당시보다 자신의 솔로 음반에서 진짜 자신의 역량을 보여준다. 들국화 당시는 한 명의 멤버로서 조하에 충실했지만 1987년 <전인권·허성욱 추억 들국화> 앨범과 본 음반에서 보여준 날카로운 감성은 사실 들국화 당시로는 예측할 수 없었던 점이었다. “가을비 소리 없이 내리네/ 거리마다 은행잎이 노랗게/약속은 자꾸만 맴돌고/비에 젖어 자연스레 진해진/걱정없는 저 자주빛이 부러워”(<가을비>)와 같은 노래에서 보여준 곡 만들기 역량은 당대를 대표하는 뮤지션들의 반열에 충분히 오를 만했다. 자신의 밴드인 파랑새와 같이한 이 음반에는 <가을비>, <아직도->라는 명곡이 있고, 게스트 기타리스트 최구희의 명연도 빛났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좋아한다는 <헛사랑(맴도는 얼굴)>도 실렸다. (박준흠)

78. 시나위 4집 (1990/오아시스레코드) [신대철(g), 김종서(v), 서태지(b), 오경환(d)]

이제 와서 80년대 말의 국내 메틀 씬을 생각하면 참으로 대단했다는 생각과 함께 음악계는 10년 싸이클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헤비메틀의 춘추 전국시대였던 당시 시나위는 김종서, 강기영(달파란), 서태지, 임재범, 김민기 등 이름만 해도 쟁쟁한(기준은 없음) 이들을 배출해낸 밴드로, 아마 국내 록 트리를 그린다면 가장 많은 잔가지를 뻗는 밴드가 될 것임은 믿어 의심할 바 없었다. 이태원, 파고다 연극관, 록 월드 등에서 공연을 하며 클럽도 거의 없이 인디 레이블도 없던 시절 국내 헤비메틀 음반의 포문을 열고 1986년 이후 꾸준한 활동을 해온 신대철은 은근과 끈기의 기타맨이라 할 수 있겠다. 신대철, 김종서, 오경환, 당시 나이를 속였던 서태지의 라인업으로 녹음된 1990년의 본작은 당시 메틀 음악들보다 깔끔, 세련, 매끄러움을 가졌고 <겨울비>덕에 방송도 탈 수 있었다. , <황무지> 등이 수록. 사실 음악보다도 시나위의 불사정신을 존경해 마지 않는 바이다. 이 앨범 뒤로 시나위는 잠시 해체 했었지만···. (한유선)

79. 김광석 2집 (1991/문화레코드)

<기다려줘>의 히트로 홀로 서기에 성공한 2년 후 발표한 이 앨범에도 역시 동물원이란 꼬리표가 뒷표지, 재킷 등에 남아있다는 사실은, 그가 이후 자신의 빛나는 음악활동을 스스로 끝장내고 황망히 떠나 버린 이제 와 보면 새삼스럽기까지 하다. 김광석이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그리고 노래방 애창곡 목록 속에서) 대체할 수 없는 위치를 장악하도록 도왔던 전형적인 ‘김광석 표 발라드’ <사랑했지만>은 한국 대중 가요에 그리도 흔한 슬픈 사랑노래의 한 절정을 긋는다. 그 곡 하나로는 어쩌면 기막히게 노래 잘하는 발라드 가수 탄생 이상의 의미는 찾기 힘들지 모르지만, 바로 뒤를 잇는 문대현의 <꽃>에서 엄숙하게 불러가는 그의 목소리가 전달하는 비장한 서정미는 대한연합노래패 메아리로 시작한 이력을 실감케 하고, 잔잔하고 덜 극적인 진행을 보이는 <사랑이라는 이유로>는 <사랑했지만>의 애절함과는 또 다른 애수 섞인 차분한 아름다움을 보이며, 이장수의 가사에 스스로 곡을 붙인 <슬픈 노래>는 일상 속에서 노래의 의미를 찾는 그의 여정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조성희)

80. 어어부 프로젝트 손익분기점 (1997/동아기획) [어어부(v, har), 장영규(v, b), 원일(북, 장고, 꽹가리)]

‘어어부’에서 이제는 ‘저자’로 이름을 바꾼 백현진이 이끄는 어어부 밴드(2집을 내면서 ‘어어부 프로젝트 사운드’로 바뀌었다)의 노래를 듣고 혹자는 대번에 혀를 찬다. 이것도 노래라고 하는 거냐며. 1996년 발표된 이 앨범은 연주와 보컬 모든 부분에서 그 해 최고의 충격 앨범이었다. 그 충격을 감지한 사람은 비록 몇 되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나쁜영화>에 삽입되었던 <아름다운 세상에-어느 가족 줄거리>는 분명 영화보다 훌륭했다. 4곡만 수록된 미니 앨범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약간 산만하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지만 다행히도 앨범애서의 새로운 시도들이 단지 즉흥적인 발상이라든가 치기 어린 일회적인 해프닝에 불과하다는 느낌은 없고 자신들만의 독특한 이미지 만들기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원일의 영향이겠지만 국악적인 요소들도 겉돌지 않게 소화되고, 실험적인 사운드들이 어느 정도 정제되어 음악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면에서는 양손을 들어주고 싶다. 과연 어어부 PS가 이 음반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겼을지는 문제삼고 싶지 않다. 얼마 전 또 다른 충격을 담은 2집을 냈으니 말이다. 그러나 SBS와 PBS에서는 18곡 모두 염세와 허무를 이유로 방송금지판정을 내렸다. (한유선)

81. 한상원 Funky Station (1997/디지탈미디어)

한상원은 에 실린 <미련>의 후반부 솔로 연주에서 나타나듯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훵키(funky)한 느낌의 연주자 중에서도 최고수이다. 그는 우리 나라에서 진정한 ‘훵크 기타의 마스터’이다. 비록 전작인 1993년 <SEOUL, Soul Of Sang>에서는 연주력에 비해 다듬어지지 않은 작곡력을 보여 주었지만, 이 음반은 모든 점에서 완숙한 모습으로 성장한 그를 보여주었다. 이 음반에서는 그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제프 벡의 그림자를 얼핏 볼 수도 있는데, 보코더 연주의 진수를 보여주는 은 제프 벡의 에서나 들을 수 있는 연주였다. 하지만 제프 벡의 연주보다도 더욱 훵키하고, <음깔>, , , <너의 욕(Alternative Version)>, 접속곡들을 들어보면 알겠지만 70년대 클래식 록 스타일에 90년대의 모던한 감각이 수용 되었다. <음깔>은 한상원이 멀티플레이어임을 유감없이 밝힌 연주곡으로 이 음반의 진정한 베스트 트랙이고, 강기영이 베이스에 참여한 <너의 욕심(Alternative Version)>, 이소라가 참여한 , 유&미 블루가 참여한 도 훌륭하다. (박준흠)

82. 조동익 Movie (1998/하나뮤직/킹레코드)

이 음반은 1994년 김홍준 감독의 <장미빛 인생>에 쓰인 곡들과 1997년 송능한 감독의 에 쓰인 곡들(미발표곡들을 포함한)묶은 음반이다. 1986년 어떤날 데뷔이래 그는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거론할 수 있는 상당수의 명반에 세션으로 참여한 명연주자이자 90년대에 와서는 가장 재능있는 음악감독의 지위에 오른 편곡자였다. 특히 그가 조동익 밴드를 이끌고 참여한 안치환 4집, 김광석 <다시 부르기2>, 장필순<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는 그가 아니면 도저히 만들어질 수 없었던 걸작들이었다. 같은 노래라도 조동익이 편곡을 하면 정말 느낌이 달라지고 맛깔스러워진다[올해 발표된 정태춘·박은옥의 <정동진/건너간다>에 실린 최성규 편곡의 <정동진(1)>과 조동익 편곡의 <정동진(2)>은 편곡의 재미를 느끼게 하는 곡들이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갖고 있는 천재적인 재능에 비해 이상하리 만치 음반을 발표하지 않는 뮤시션이다.(이것은 그의 집안 내력인가?). 사실 그 정도라면 적어도 5~6장의 음반을 발표했어도 됐지만 이 음반은 1994년 솔로 데뷔작 동경에 이은 2집에 불과하다. <현기증>, <이틀>등 그만의 어법으로 만들어진 테크노 연주곡, <첫 발자국>등 관조적인 소품, <그림자 춤> 등 미발표곡이 수록된 이 음반은 어찌보면 정규음반 성격은 아니지만 조동익을 알 수 있게 하는 명작임에는 분명하다. (박준흠)

83. 신촌블루스 2집 (1989/서라벌레코드)

한국적 블루스를 지향하는 베테랑 뮤지션들이 이미 한차례 공동작업을 거쳐 얼마간 여유롭게 그러나 의욕충만하게 덤벼들었다는 것, 팀의 주축인 엄인호와 이정선의 다소 다른 취향이 블루스 록쪽에서 타협점을 찾았으며 브래스 섹션이 사운드를 풍요롭게 하는 데 기여했다는 등등의 장황한 설명을 한순간 무색하게 만드는 뭔가가 이 앨범에는 있다. 그것은 엄인호와 노래를 주고 받는 블루스 메들리 <바람인가 빗속에서>로 등장하여 덜 상한 목소리를 실컷 내지르며 <골목길>에서 불멸의 한순간을 남긴 고 김현식의 후광일 수도 있고, 한영애가 비워둔 여성 보컬의 자리를 별 아쉬움 없이 메운 매력적인 보컬리스트 정서용일 수도 있으며, 김현식과의 인연으로 참여한 봄·여름·가을·겨울의 보사노바곡 <또 하나의 내가 있다면>의 쓸쓸하지만 단정한 면모일지도 모르고, 한영애 2집에도 실렸던 <루씰>의 작곡자 엄인호 버전의 색다른 맛일 수도 있다. 아니, 이 모든 걸 합치고 미쳐 언급하지 못한 것까지 더한 대도 잡지 못할 그것은 90년대 이전 한국 대중음악의 (상대적) 풍요로움과 가능성이 결국 마땅한 계승자를 찾지 못하고 그대로 소진되어 버린 데 사무치는 회한일지도 모르겠다. (조성희)

84. 어어부 프로젝트 사운드 개, 럭키스타 (1998/펌프/디지탈미디어) [저자(v), 장영규(v, b, g, key, prog)]

<개, 럭키스타>와 비교하면 어어부밴드의 이름으로 발표된 작년의 손익분기점은 정말 예고편에 불과했다. ‘어어부 프로젝트 사운드(이하 어어부)’로 개명하고 내놓은 이 음반은 퍼포먼스적인 성격이 강했던 지난 어어부의 무대가 제공하던 것 이상의 충격을 제공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음악적인 매력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장영규가 주도한 이 앨범의 사운드는 그 동안 질시의 눈으로 바라보던 이들을 충분히 제압할 만하며 원일의 타악기가 빠졌지만(원일은 <인스탄트 꿈>에만 세션으로 참여) 마림바, 가야금, 만돌린 등의 다양한 악기가 사용되어 소리는 더욱 풍부해졌다. 18곡의 수록곡이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어어부의 <개, 럭키스타>는 유토피아를 기대하는 사람들의 환상을, 그를 위한 합리화를 허용하지 않는다(그래서 이를 소화할 능력이 없는 방송 심의위원들은 이들에게 빨간 딱지를 붙여 버렸다). 그래서 정상적인 세상에서 이 앨범은 상당히 불편하게 들린다. (김민규)

85. 김수철 황천길 (1989/서울음반)

1981년 작은거인 2집이라는 불멸의 하드록 음반을 내고도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청년 로커 김수철은 의외로 팝 발라드로 진로를 변경했다. 하지만 이는 ‘의외’ 라기보다는 당시 가요계에서 그가 선택할 수 있었던 범위가 매우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같다. 그 결과 만들어낸 것이 <못다핀 꽃 한 송이>, <세월>, <정녕 그대를>, <내일>과 같은 팝 발라드가 담긴 김수철 1집(83)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당시 대중들은 이 곡들에 큰 호응을 보였고, 이 음반은 김수철의 대표작이 되었다. 그렇지만 1985년 3집 이후 아티스트로서의 본 모습으로 돌아가려 시도했던 그는 이전부터 그의 숙원사업이었던 국악과 양악의 접목을 시도한다. 이른바 ‘크로스오버 국악’ 작업을 시도하는데, 그 첫 작품이 1987년에 나온 <비애>, <인생>, <삶과 죽음>이 담긴 <김수철> 이었다. 그리고 이 <황천길>은 이런 그의 일련의 작업이 드디어 완벽한 결실을 본 작품으로, 태평소가 주선율로 이용되는 <황천길>, 아쟁이 주선율로 쓰여지는 <한> 등 국악기의 맛이 이럴수도 있음을 새롭게 인식시킨 ‘퓨전 국악’의 이정표였다. (박준흠)

86. 허클베리 핀 18일의 수요일 (1998/강아지 문화 예술) [이기용(g, b), 남상아(v, g), 김상우(d)]

세상에는 화려한 조명을 주식으로 삼는 이들이 있는 반면 그 빛의 불순함을 못 견뎌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들 스스로 ‘어둠의 자식들’ 이길 원한 것이 아니다. 이들에게 왜 이를 악물고 힘들게 소리내고 있느냐고 묻기 전에 지금 자신이 발 딛고 있는 지점을 인지하는 것이 우선이지 않을까? 강아지 문화/예술의 세 번재 앨범인 허클베리 핀의 <18일의 수요일>은 올해 신촌/홍대 클럽 씬에서 나온 반가운 결과물 중의 하나다. 이 앨범에서 허클베리 핀은 ‘불을 지르는 아이’와 ‘절름발이’의 꿈의 비틀린 틈새 사이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각성하고 그것을 내성적인 목소리로 표출한다. 스스로 ‘광의의 펑크’라고 이야기하는 이들 음악의 정서는 일그러진 디스토션 기타음을 배경으로 무작정 내달리는 것에 있지 않다. <갈가마귀>, <사마귀>, <죽이다> 같이 거칠고 단순한 구성의 곡이 쉽게 귀에 채이지만 허클베리 핀의 음악이 우리에게 공명하는 것은 ‘태양은 구름을 몰아내/우리의 지도를 그릴 것<죽이다>)’이라고 당차게 내치는 목소리와 밴드의 자화상인 <허클베리 핀>의 낮은 목소리가 공존하는 것에 있다. (김민규)

87. 이상은 외롭고 웃긴 가게 (1997/킹레코드)

이상은은 1988년 MBC 강변가요제에서 <담다디>로 대상을 차지하면서 가요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뮤지션이다. 데뷔시는 탬버린을 들고 무대에서 춤추며 노래하는 어린 가수에 불과했었고, 이때는 그녀의 뮤지션으로서의 가능성을 눈치채기에는 사실 불가능했었다. 하지만 1992년에 이상은 그녀의 음악 경력에서 새로운 시발점이 되는 <이상은>을 발표했다. 감각 있는 젊은 뮤지션 안진우의 편곡과 기타가 뛰어난 이 음반은 그때까지 그녀가 갖고 있었던 ‘가벼운 애들 가수’라는 이미지를 불식시켰다. 이는 예상치 못한 실로 놀라운 변신이었다. 1995년에는 완벽한 음악감독이 되어 <공무도하가>를 일본인 스탭들을 이끌고 녹음했고, 1997년에는 이 음반을 발표하여 스타일리스트로서의 이상은으로 성장했다. <집>, <사막>, <외롭고 웃긴 가게>로 차례로 여행을 떠난 그녀는 이 땅에서 음악의 한 유파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이상은과 비슷한 성향의···’라는 명칭을 갖고 있다. (박준흠)

88. 앤 Skinny Ann’s Skinny Funky (1998/인디) [장현정(v), 최성훈(g, v), 강희찬(b), 이대우(d)]

‘독립 레이블’을 통한 언더그라운드 씬의 앨범은 90년대 중반 이후 매우 번성했다. 때로는 열악한 작업환경을 드러내는 것으로, 때로는 투철하고 고집스러운 반골정신으로, 때로는 기상천외한 각종 아이디어들로 그들은 기존 대중음악시장을 잠식하려 하고 있다. 그러한 소위 ‘인디 음악’계에서 가장 주목받을 만한 밴드는 바로 앤이다. 이들은 때로는 ‘funky’하고, 때로는 스트레이트하며 때로는 서정적이기도 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동시에 매우 안정적인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장현정의 보컬은 랩과 멈블을 종횡하며 새로운 그루브를 만들어내는 데 그치지 않고, 재기 넘치는 가사전달마저 선보이고 있다. 외국의 몇몇 밴드와 닮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다양함 넘치는 앨범 구성은 이들을 여타의 ‘비인가종목 카피 밴드’들로부터 차별화한다. <무기력 대폭발>에서의 스트레이트함은 히트 넘버 <러브레터>로 그들을 접한 많은 청자들을 의아하게 만들기도 한다. 서프 뮤직이나 스카 등의 ‘한국적으로 소화해내기 힘든’ 서커스를 선보이기 때문에 이들이 각광 받아야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조원희)

89. 시나위 5집 (1995/워너뮤직) [신대철(g), 손성훈(v), 정한종(b), 신동현(d)]

이들은 1986년 데뷔 음반으로 우리 나라에서 헤비메틀의 시대를 연 장본인이면서(사실 최초의 헤비메틀 연주가 담긴 음반은 1983년 무당 2집이었다. 여기서 <그 길을 따라>는 헤비메틀 리프를 본격적으로 차용한 곡이다), 1990년 자신들의 4집으로 그간의 힘겨웠던 ‘메틀 여정’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로써 시나위는 잠정적으로 해체되었고, 일군의 메틀 청년들(김종서, 임재범, 이근형, 오태호, 서태지 등)은 진로변경을 모색했다. 신대철은 김영진(베이스/시나위, 카리스마 출신), 오경환(드럼/뮤즈 에로스 출신)과 1991년에 블루지한 하드 록을 추구했던 자유를 결성해서 앨범 하나를 발표했고, 박광현 2집, 남궁연 1집에서는 세션을, 손성훈의 솔로 음반에서 프로듀서와 세션을 했다. 하지만 시나위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었던 그는 5년만에 다시 시나위를 재개, 90년대 록 조류 (얼터너티브 록)를 흡수한 본작을 발표했다. 그의 달라진 기타톤(그런지 기타 톤)이 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이 음반에는 <매 맞는 아이>, <지켜봐야 해>, <너에게 주고 싶어>, <혼돈의 끝>, <상심의 계단>등 좋은 작품이 수록되었고, 노래에 사회적 메시지를 담으려 고심한 흔적이 역력했다. 시나위의 대표작을 꼽으라면 이 음반을 선정하겠다. (박준흠)

90. H2O 2집 (1992/아세아레코드) [김준원(v), 박현준(g, key), 강기영(b, key), 김민기(d)]

러닝타임 35분짜리 앨범이지만 그 내용물은 녹록하지 않다. 시나위 출신의 강기영을 중심으로 당시 TV에 출연해 수많은 여성들을 설레게 했던 박현준과(비록 그녀들은 이들의 앨범을 듣지 않았지만) 김준원이 모인 H2O는 당시 한국 록 음악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던 헤비메틀이나 LA 팝메틀과는 다른, 시대를 앞서가는 음악을 선보였다. 흔히 에디 베더(Pearl Jam)에 비교되곤 하는 김준원의 개성 있는 보컬 톤이라든가 단순히 드럼을 받치는 것이 아니라 그루브를 만들어내는 개성 있는 강기영의 베이스, 테크닉 싸움장 같던 당대의 기타 사운드와는 동떨어진 배킹 위주의 여유로운 박현준의 기타는 3집에서 만개하여 90년대 최고의 명반 중 하나를 낳지만 여기서도 이미 그 날카로움은 주머니를 뚫고 솟아나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개성’은 삐삐밴드에서 그 극단을 보여준다. 80년대의 많은 헤비메틀 음악인들이 받은 ‘테크닉만 출중한 생각 없는 카피 집단’이라는 비판은 이들에게는 전혀 유효하지 않다. 추천 트랙은 <너의 눈에 비치는 내 모습>으로, 뻔한 발라드곡처럼 보이는 제목과는 딴판으로 한국에서 몇 안되는 베이스가 돋보이는 명곡이다. (신승렬)

91. 정태춘·박은옥 92년 장마, 종로에서 (1993/삶의 문화/한국음반)

모던 포크의 감각적 수용자로 시작하여 이제는 수단으로 포크를 수용한 정태춘은 민중운동의 통일되고 확실한 목소리가 사라져가고 있는 이즈음에 다시 재조명되어 마땅하다. 그는 이데올로기를 노래한 가수가 아니다. 그가 엘리트 지식인들에 대하여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는 이웃의 삶을 이성이 아닌 가슴으로 가감없이 노래하고자 했으며 그 과정에서 제도권의 박해로 그의 음반들은 ‘불법’이라는 딱지를 달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을 뒤돌아 볼 때 <아! 대한민국>과 <92년 장마, 종로에서> 두 음반의 합법화 결정은 그의 선택이 옳았으며 그의 투쟁이 조그마한 승리를 획득했음을 의미한다. 그 중에서도 <우리들의 죽음>과 같은 낮게 읊조리는 절규가 가득 찬 <아! 대한민국>과는 달리 본인도 밝히듯 여전히 그 메시지는 강렬하지만 보다 일상적인 정서에 가까이한 <92년 장마, 종로에서>는 그의 향토적인 초기작과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저 들에 불을 놓아>와 같은 강렬한 어조의 노래들로 가득 차 있다. 그의 아내이자 동지인 박은옥과 함께 한 이 음반은 사회성 짙은 모던 포크의 걸작으로, 민중가요의 제도권에 대한 소중한 승리로서 기억되고 있다. (황정)

92. 양희은 1집 (1971/킹레코드)

세상에는 무수한 <아침이슬>이 있다. 1971년 앳된 처녀의 맑고도 강한 목소리에 실려 세상에 나왔던 젊은 날의 고뇌와 결단을 그린 서정적인 노래 한 곡은, 수록음반이 작곡자 김민기 독집의 판매금지조치에 휩쓸려 공식적인 무대와 시장에서 자취를 감춘 후에도 사람들의 가슴속에 선연히 살아 독재정권의 신경질적인 과잉우려를 실현시키기라도 할 듯 술집에서, 거리에서 끝도 없이 불리워졌다. 그 결과 애초의 소박함 위에 부르는 이의 비분강개 혹은 결기가 덧붙여졌고, 80년대에 들어와 얼마간 자기도취적인 정서는 소시민적·지사적이라는 당시로선 치명적이었던 딱지를 달기도 했다. 그리고 드디어 1987년 가을, 6월 항쟁의 가시적 성과물 중 하나로서 <아침이슬>이란 더블앨범에 간소한 기타 반주의 원곡이 그대로 실림으로써 이 노래를 구전으로만 접했던 세대와 처음 조우했다. 한편 ‘국민정부’가 <상록수>를 국민가요로 삼을 것을 예견하기라도 하듯, 작년 가을 김민기 헌정앨범 <1997 아침이슬>의 서두를 장식한 새 녹음은 남성합창을 깔고 애국가 한 구절과 동반한 무게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만들고 부른 이들조차 버거울 정도로 시대와 호흡하며 대중과 함께 했던 노래가 첫 선을 보인 이 음반은 함께 수록된 곡들이 <꽃 피우는 아이>를 제외하면 <일곱 송이 수선화(Seven Daffodils) 등 모두 60년대 미국 포크송의 번안곡이었던 탓인지 재발매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그대로 전설과 기억의 영역 속에 남게 되었다. (조성희)

93. 신중현과 뮤직파워 1집 (1980/지구레코드) [신중현(v, g), 김문숙(v), 박점미(v), 이승환(d), 박태우(b), 김정희(key), 이근희(trumpet), 홍성호(a.sax), 한준철(t.sax)]

1980년대에 해금되면서 내놓은 작품인 이 음반은 9인조 브래스 록 그룹으로 만든 음반이었고, 신중현의 음반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작품이었다. 그를 거론 할 때는 보통 한국 록의 대부로 얘기하면서 <신중현과 엽전들> 1집을 그의 대표작으로 보아왔다. 하지만 사실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은 더 맨이나 뮤직파워 같은 브래스, 키보드 파트가 있으면서 특유의 ‘쩍쩍 달라붙는’ 느낌의 리듬 기타 배킹(backing)이 깔리는 음악이다. 이는 이 음반의 <아무도 없지만>, <저무는 바닷가>, <떠나야 할 사람>이 바로 그 증거이다. 이들은 멋진 리듬 기타 배킹과 신중현만의 감각적인 솔로 애드립이 돋보이는 매우 훌륭한 곡들인데, 이 음반은 사실 묻혀져 있는 상태다. 그러나 그도 인정하듯(그는 이 음반의 기타 애드립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 음반에서의 감각은 그의 연주경력에서의 베스트이고, 그의 필은 무척이나 독특했다. (박준흠)

94. 노래를 찾는 사람들 2집 (1989/서울음반)

1984년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온순한 인상의 합법 앨범을 발표한 것은 1988 서총련 노래단 조국과 청춘이 일렉트릭 사운드를 받아들인 것 이상으로 (물론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 한정된 이야기겠지만) 이슈를 일으켰다. 눈을 가린 경주마와 같은 이러한 시각에 의해 벌어진 간극은 아직도 대중음악의 일관된 흐름 내에서 이러한 흐름의 음악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조건을 낳고 있다(록이 ‘저항’이냐 아니냐, 록을 ‘수단’으로 여기느니 하는 허접쓰레기 같은 논쟁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며). 노래를 찾는 사람들을 안치환, 김광석, 권진원 등을 배출한 전직 운동권 노래패로 인식하는 것은 이러한 간극이 낳은 현실이다. 간간이 모습이 지워진 졸업사진을(누가 이들의 모습을 이 사진에서 지우려 했던가) 재킷으로 한 노·찾·사 2집은 노래패 곡의 전형에서 벗어나진 않지만 이전의 조악할 수밖에 없었던 불법 테이프의 느낌과는 달리 (따로 또 같이의) 나동민의 프로듀싱을 거치며 보다 세련된 면모를 보인다. 안치환이 부른 <솔아 솔아 푸른 솔아>, 여공의 모습을 그린 <사계>, 정태춘, 박은옥의 <5·18>에 삽입된 <오월의 노래> 등 모두 80년대 노래운동의 훌륭한 자산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산을 ‘후일 담류’로 싸게 팔아 넘기려는 이들은 <저 평등의 땅에>의 당당하고 아름다운 서정을 반드시 다시 들어야 한다. (김민규)

95. 정태춘·박은옥 북한강에서/바람 (1985/지구레코드)

남도에는 황토가 있다. 불그스레한 황톳길에 발짝마다 먼지 풀풀 날리며 터벅터벅 걸어가는 한 사내의 등에는 ‘시름짐만 한 보따리’고, ‘저 산꼭대기 아버지 무덤'(<사망부가>)이 기다리는 그 길 끝머리에는 도솔천이 얼핏 비칠지도 모른다. ‘간다간다/나는 간다/선말고개/넘어간다’ (<애고, 도솔천아>), 혹은 ‘님의 가슴/내가 안고/육자배기나/할까요'(<장서방네 노을>) 등, 4/4조 민요가락이 구비구비 고개 넘어 들을 지나 강을 끼고 바다로 흘러가며, 아스팔트의 아이들에게도 산업화와 새마을 운동 이전 선조에게서 유전된 흙의 기억을 일깨운다. 박은옥의 ‘곱디고운’ 목소리는 <바람>과 <봉숭아>에서 들을 수 있고, 1집부터 함께 했던 유지연이 편곡을 담당하여 일렉트릭 기타 속에 진국으로 어울리는 한국적인 가락을 조율하는 데 일조했다. (조성희)

96. 김현식 4집 (1988/서라벌레코드)

짧은 인생역정 동안의 간난고초와 탐닉의 흔적을 고스란히 새겨오며 시기적으로 급격한 변모를 보였던 김현식의 목소리(들) 가운데 남은 이들 뇌리에 가장 선명히 남아 있는 것이 아마 이 시절의 강렬한 허스키 보이스가 아닐까. 1987년 대마초 파동 이후 타의에 의한 공백기를 딛고 돌아온 그는 비록 미청년의 면모는 잃었으나 목소리의 거친 기운이 강렬함에 깊이와 매력을 더해주는 시기를 맞았고, 그 절정의 순간들이 신촌블루스 2집과 이 앨범에 담겨있다. 백 밴드라기보다 오히려 음악적 동반자였던 봄·여름·가을·겨울과 헤어진 후 만들어진 이 앨범에서는 송병준, 이정선, 장기호, 유재하 등의 곡과 자작곡 두 곡이 실렸고, 박청귀 등 세션 뮤지션들의 도움과 송홍섭 편곡을 거쳐 이병우의 프로듀싱이 앨범을 마무리했다. 김현식 특유의 발라드 <언제나 그대 내 곁에>, <사랑할 수 없어>도 새삼 감동적이며, 신촌블루스의 이정선이 제공한 <한밤중에>, <우리네 인생> 모두 훌륭하지만 특히 후자는 흥겹게 출렁이는 생의 낙관 혹은 달관으로서 유독 돋보인다. 유재하 버전과 대조되는 김현식의 <그대 내 품에>는 꺼칠한 남자 목소리의 힘과 아름다움을 여지없이 과시하고 있다. 김현식 이전에 김현식 없고 김현식 이후에 김현식 없다. (조성희)

97. 김현식 2집 (1984/서라벌레코드)

전인권과 함께 80년대를 상징하는 보컬리스트로서 고 김현식을 빼놓을 수 없다. 그를 노래만 잘 불렀던 ‘팝 발라드’ 가수로 폄하한다면 6,70년대 국내 록의 대부분을 ‘밤무대 사운드’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1980년 <봄·여름·가을·겨울>, <당신의 모습>이 실린 데뷔 앨범의 처참한 실패 이후 4년만에 와신상담 내놓은 이 앨범의 성공은 김현식을 공중파와 공연장 모두에서 환영받는 이로 변모시켰다. 이렇게 된 것에는 <사랑했어요>의 멜랑콜리가 지대한 공헌을 했고(이러한 ‘소녀취향’의 감상을 꼬집는 이들이 있지만 이 앨범의 상업적 성공이 없었더라면 김현식이 이후 앨범에서 자신의 원했던 음악을 표현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을까?)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히 독보적이었지만 (<뭐라고 딱 꼬집어 얘기할 수 없어요>를 김태화처럼 부를 이가 없듯이 <골목길>을 김현식의 느낌으로 부를 이가 없다) 김현식이 뮤지션으로 비중 있게 언급될 수 있는 이유는 최이철의 기타가 발군인 블루스 록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와 김현식의 샤우팅 보컬이 빛을 발하는 <어둠 그 별 빛>, <회상> 등의 곡에 있다. 김현식은 이 앨범 이후 백 밴드 봄·여름·가을·겨울과 함께 3집을 발표하며 더욱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민규)

98. 신촌블루스 3집 (1990/서라벌레코드) [엄인호(g, v), 김영배(g), 김명수(key), 안동열(key), 이창수(key), 이원재(b), 전종원(d), 이정식(sax), 정경화(v), 김미옥(v), 김현식(v), 이은미(v)]

가요와 블루스의 접목이라는 대전제하에 여성가수들의 보컬이라는 소전제를 훌륭하게 배치한 신촌블루스 3집은 이정선이라는 한국적 블루스 기타의 모범이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엄인호의 신촌블루스’ 걸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엄인호의 기타는 그것이 독학에 의한 것이기에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고유의 색깔이 있다. 이러한 면 때문에 신촌블루스의 ‘가요 블루스’는 곧 엄인호의 기타와 동격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또한 엄인호의 기타는 객원으로 참여한 보켤과 절묘하게 어울리는 애드립에서 더욱 더 그 맛을 느끼게 하는데, 역시 3집에서도 1, 2집의 한영애, 김현식에 못지 않은 이은미, 정경화라는 걸출한 여성보컬과 함께 그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다소 록적 톤을 가진 이은미와 애절한 고음역을 지닌 정경화라는 블루스보컬의 신성들이 각기 자신의 색깔에 맞게 <그댄 바람에 안개로 날리고···>와 <비오는 어느 저녁>을 녹음한 이 음반은 이 두 곡만으로도 한국적인 블루스의 대표반으로 꼽히기에 손색이 없다. 즉, 신촌블루스의 음악은 블루스가 가지는 대중친화력을 가장 뛰어나게 한국화한 대중음악계의 또 다른 시도라 할 수 있다. (황정)

99. 윤도현 1집 (1994/LG미디어)

공중파 프로그램에서 ‘어이, 거기 박수 좀 쳐요’라고 말한 윤도현은 그 순간 ‘제 2의 강산에’인 양 여겨졌다. 흥겨운 록큰롤 넘버 <타잔>의 이미지 또한 강산에의 <예럴랄라>와 겹치며, 이를 부추킬 만했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운 밴드의 수장이 된 지금의 윤도현은 강산에와는 다른 방향으로 변모했다. 요즘 이야 긴 머리를 휘날리며 캐주얼웨어의 패션 모델과 뮤지컬 주인공으로 맹활약하고 있지만 갓 제대한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 시절 윤도현의 음악은 외모 만큼이나 소박하고 솔직했다(앨범 부클릿에 실린 윤도현의 말은 정말 그다운 표현이다). 윤도현을 튀어 보이게 만든 <타잔>과 라이브시 혼자 피아노를 치며 부르곤 하던 <가을 우체국 앞에서>가 공존하는 것은 이후 2집의 <이 땅에 살기 위하여>와 <다시 한 번>이 함께 실리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 외 <임진강>, <큰 별은 없어> 등의 곡이 실린 이 앨범에서 세션으로 참가한 토미 기타, 손진태, 조동익, 강호정, 함춘호 등은 한 몫 톡톡이 했다(이후 강호정, 엄태환은 윤도현 밴드에 참여한다). 이 앨범은 가능성으로 남았지만 윤도현밴드로 내놓은 2집은 ‘성장’이란 말이 무색하지 않은 앨범이었다. (김민규)

100. N.EX.T The Return Of N.EX.T part.Ⅰ The Being(1994/대영에이브이) [신해철(v,key, g), 임창수(g), 이동규(b,v), 이수용(d)]

에 이은 넥스트의 두 번째 앨범으로 이후 이들의 트레이드마크가 될 문양(이집트 벽화에서 나온 듯한 눈, 혹은 새의 변형)과 장황한 앨범제목, 철학적 거대주제에 대한 도전, 화려한 기타 연주와 신서사이저의 웅장한 사운드 스케이프들을 한 눈에 펼쳐놓았고, 이는 제 3부 로 이어진다. 그들의 열성팬이 결집되기 시작했고, 그 막대한 쪽수와 열렬한 보위능력을 겸비한 동아리밖의 일반인에겐 어린 시절의 추억 속에서 죽음에 대한 인식을 건드려 본 작고 아름다운 발라드 <날아라 병아리>를 선사했다. 사후적으로 평가한다면, 이들이야말로 대한민국이 단군 이래 최대의 번영을 누렸다는 1990년대를 대표하는 사운드가 아니었나 싶다. 뭔가 호화롭고 거창하면서도 왠지 속은 비어 있지 않은가 하는 의심을 던진다는 면에서, 마침 (다시 한 번 역사를 단순화시킨다면) 단군 이래 최대의 위기라는 IMF 체제하에서 넥스트 역시 구조조정 내지 슬림화의 과정을 거쳐 좌장 신해철이 펼치는 단촐한 솔로 활동으로 귀결되지 않았는가 말이다. (조성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