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확인, 겸재정선의 300년전 한강’을 보고…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정선은 그의 작품집 정교명승첩 32개의 그림 중에 20개는 한강의 풍경을 그려 넣었다. 이전 시기 화가들이 중국의 산수를 그리는 관념 산수화를 주로 그리는데 비해, 겸재는 한강, 금강산 등 우리나라의 풍경을 사실보다 더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진경산수화를 그려냈다. 녹운단에서 시작해서 낙전정까지, 겸재는 지금으로부터 300년 전 한강의 모습을 우리 후손들에게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진경산수화.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나라 산천을 그린 이 진경산수화는 18세기에 나타났다. 후금이 명을 누르고 청을 건국하면서 우리 조선은 명 대신 성리학 전통을 계승하였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진경 문화를 꽃 피웠다. 정조시대에 그 꽃을 피우는 진경문화는 사상, 문학 등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주었다.
다만, 이 훌륭한 문화를 우리 후손들이 바르게 이어 받지 못하고 어느새 이젠 중국이 아닌 서양의 나라들을 흉내내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한강의 아름다운 풍경, 특히 양천은 중국 사신들이 우리나라를 올 때 ‘양천을 못 봤다면 조선을 구경한 것이라 말하지 말라.’고 말할 정도로 빼어난 풍광을 지니고 있었으나 무분별한 개발로 그 빼어난 풍광 흔적조차 찾기 힘들어졌다. 이는 양천뿐 아니라 한강줄기 따라 늘어섰던 수많은 정자들, 기와별장들도 이제는 위치조차 가늠하기 힘들어졌다. 대신 시멘트로 만들어진 회색 건물들만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앞으로 분별없는 계획으로 훌륭한 문화적 자산을 없애버리는 시대적 착오는 없어야 한다. 오히려 그것들을 잘 보존해서 영국이나 프랑스처럼 관광자원으로 이용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일 것이다.
진경 문화. 우리 나라 역사상 가장 화려한 문화를 꽃피운 때가 아니었나한다. 우리도 원숭이 흉내내듯 다른 나라 따라가기에 급급하지 말고, 우리 나름대로 자부심과 자신감을 갖고 독특하고 고유한 ‘우리’의 문화를 꽃피우는, 제2의 진경 시대를 열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