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 – 향수’를 읽고..

 

향    수




정 지 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 시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줍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밤하늘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나는 태어나서 줄곧 서울에서만 자라서 이 시에서와 같은 고향 – 향수 – 가 없다. 그래서 이 시에 나온 풍경들, 평화롭고 단란한 농촌의 모습들을 동경하기도 한다. 너무나 평화롭고 한적하고 조용하고 정직해 보이는 농촌 생활이 바쁘고 복잡하고 시끄럽고 경쟁적인 도시 생활에 지친 현대인들에겐 영원한 휴식처- 그 이름하여 고향 -이다. 때론 나도 이 도시를 떠나 농촌에서 소박하게 사는 꿈을 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