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자 표기법과 외래어 표기법의 문제점

 

로마자 표기법과 외래어 표기법의 문제점



근래에 들어서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세계화 열풍이 온 세계를 휩쓸고 있다. 과거 대부분의 경제, 문화, 사회 등의 활동이 한 국가 내에서 이루어진 반면, 현대 사회는 거의 모든 활동이 국제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외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는 만큼, 외국인들과의 언어 소통이 중요해지고 있다. 우리가 접하는 외국인 중에 많은 수가 로마자를 쓰는 아메리카나 유럽에서 온 사람들이므로 그들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쓰는 한글과 그들이 쓰는 로마자를 연결해 주는 규칙이 필요하다. 그래서 과거 문교부에서 84년, 86년에 로마자 표기법과 외래어 표기법을 각각 새로 제정,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 로마자 표기법과 외래어 표기법에는 문제가 있다.




현재 외래어 표기법의 원칙은 ‘되도록 현지어 발음에 가깝게 표기한다.’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대문호 ‘푸슈킨’의 경우, 현행 외래어 표기법에 의하면 ‘푸슈킨’이 옳으나, 몇몇 출판사들은 현지음과는 거리가 있다며 ‘뿌쉬낀’을 고집하고 있다. 현행 외래어 표기법에는, ‘파열음 표기에는 된소리를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고 제4항에 명시 되어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뿌쉬킨’이 아니라 ‘푸슈킨’이여야 하지만, ‘되도록 현지어 발음에 가깝게’ 라는 대원칙에 맞게 표현하려면 ‘뿌쉬킨’이여야 한다. 이것은 외래어 표기법 내에 모순이 있는 것이 아닌가?


브라질 화폐 단위인 ‘Real’도 같은 경우이다. 옛 스페인의 화폐단위에서 생겨난 이 말은 포르투갈어를 자국어로 쓰고 있는 브라질 현지 발음으로는 ‘헤알’과 비슷하지만 국립 국어 연구원이 발간한 외래어 표기 용례집에 따르면 ‘레알’로 표기하도록 규정되어있다. 또 지난 97년 정부∙언론 외래어 심의 공동위원회가 마련한 표기법도 ‘레알’로 쓰도록 권고하고 있다. 원래 포르투갈어에서 단어 첫머리에 오는 ‘r’은 우리말 발음의 ‘ㅎ’에 가깝게 소리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라질의 축구 선수 ‘Ronaldo’를 ‘호나우도’라고 발음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왜 ‘Real’은 ‘레알’이고 ‘Ronaldo’는 ‘호나우도’인가? 그것은 ‘Real’의 경우에는 외래어 심의 공동위원회가 심사를 거쳐 ‘레알’로 승인했기 때문이고 ‘Ronaldo’와 같은 사람이름의 경우엔 일일이 규정을 만들 수 없어 현지 발음에 충실하게 표기한다는 원칙에 의해 ‘호나우도’로 표기하고 있다. 중국의 통화 단위인 ‘위안’도 현지에서는 ‘위앤’으로 발음하고 있어서 표기와 발음간의 차이가 있다.


굳이 이런 예를 들지 않아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영어 단어들도 현지 발음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라디오, 비아그라도 현지인들은 래디오, 바이애그라로 발음하고 있다. 이는 심의위에서 발음보다는 영어 스펠링을 기준으로 표기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 나라 말에는 /f/와 /v/, /θ/ 발음이 없고, /r/과 /l/이 구분이 힘들기 때문에 File과 Pile을 똑같이 ‘파일’이라고 발음하고, Fax와 Pax를 똑같이 ‘팩스’라고 발음한다. 또, Bolt와 Volt, Right와 Light는 각기 ‘볼트’, ‘라이트’로 밖에 쓸 수 없어 대화할 때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우리는 모택동을 ‘마오쩌둥’으로도 쓰고 있고, 손문을 ‘쑨원’으로도 쓰고 있다. 그렇다면 더 이상 된소리를 쓰지 않도록 규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게다가 ‘순경음 ㅍ’(/f/)과 ‘순경음 ㅂ’(/v/), /θ/, /r/ 등을 표시할 새로운 문자를 도입하는 것도 정확한 음가 표현의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외래어 표기법의 취지가 외래어를 한글로 충실하게 표현하자고 제정된 것이므로 현지 발음을 최대한 반영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한다.


외래어 표기법에 관한 결정권을 지니고 있는 국립 국어 연구원과 외래어 심의 위원회는 외래어 사용이 빈번해지는 세계화 시대라는 점을 의식해 이러한 실제 발음과 표기상의 괴리를 극복하기 위해서, 정확한 표기에 노력해야 할 것이며, 너무 현실에 얽매여 낡은 외래어 표기법을 고수하려고 하지만 말고 혼란이 예상되더라도 필요에 따라 개정을 함으로써 국민들의 언어 생활에 혼란이 없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남의 말을 한글로 표시하는 외래어 표기법에도 문제가 있지만 우리말을 로마자로 나타날 때 쓰는 로마자 표기법에도 고쳐져야 할 점이 있다. 현재 전국 도로 표지판과 지하철 안내판에 모음 앞에서의 여린소리/ㄱ, ㄷ, ㅂ, ㅈ/은 /k, t, p, ch/로 표기되어 있다. /k, t, p, ch/의 발음이 /ㄱ, ㄷ, ㅂ, ㅈ/인가? 영어에서 /k, t, p, ch/는 거센소리/ㅋ, ㅌ, ㅍ, ㅊ/로 소리 난다. 따라서 영어 교육을 받아 온 대부분의 한국인으로서는 /k, t, p, ch/를 /ㅋ, ㅌ, ㅍ, ㅊ/로 밖에 읽을 수 없다. /k, t, p, ch/가 /ㄱ, ㄷ, ㅂ, ㅈ/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ㅋ, ㅌ, ㅍ, ㅊ/는 어떻게 나타내고 있는가? /k’, t’, p’, ch’/가 그 답이다. /k, t, p, ch/에다가 ‘ ’ ’(어깨점)을 붙인 것이다. 그러나 로마자 표기법 제8항에 의하면 “인쇄나 타자의 어려움이 있을 때에는 의미의 혼동을 초래하지 않을 경우 ŏ, ŭ, yŏ, ŭi 등의 ‘ ˘ ’(반달표)와 /k’, t’, p’, ch’/ 들의 ‘ ’ ’(어깨점)을 생략할 수 있다.”라고 명기되어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 ’ ’(어깨점)이 없어도 발음하는데 불편을 느끼지 못하므로 (ex: t’al, tal 둘 다 ‘탈’로 읽을 수 있다.) ‘ ’ ’(어깨점)을 생략한다. 그러면 ‘공’도 ‘kong’이고 ‘콩’도 ‘kong’이다. ‘달’도 ‘tal’이고, ‘탈’도 ‘tal’이 된다. ‘발, 팔’ 모두 ‘pal’이고, ‘장녀’와 ‘창녀’의 구분도 사라진다. /k’, k/는 각각 /ㅋ, ㄱ/인데 ‘ ’ ’(어깨점)이 빠지면 어떻게 의미의 혼동을 초래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tch/를 ‘ㅉ’로 읽을 사람이 우리 나라에 얼마나 있겠는가? 결국 일반 국민들은 /ㄷ, ㄸ, ㅌ/을 /d, dd, t/로 알고 있는데 반해, 로마자 표기법은 /t, tt, t’/로 정해져 있어 같은 단어 ‘tal’을 두고 ‘동상이몽’이 되기 일쑤이다.


모음의 경우에도 ‘ ˘ ’(반달표)의 사회적 인식이 매우 낮기 때문에 /ŏ, ŭ, yŏ, ŭi/ 등의 발음을 올바로 실행하기가 힘들다. 예를 들어 어떤 외국인이 우리 나라에 들려서 신천(Shinch’ŏn)에 가려고 하는데 신촌(Shinch’on) 표시판을 보고 내릴 수도 있지 않은가? 모음에서 가장 쟁점이 되는 문제는 /ㅓ/와 /ㅡ/의 표현인데, 이 글자들은 세계에 유례가 드문 글자이면서 독특한 소리를 나타내므로 어떤 약속기호를 잘 정해서 이를 지속적으로 세계에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나라 처음 규정인 ‘조선어음 로마자 표기법’(1940)에서 /ㅓ/소리는 eo로, /ㅡ/소리는 eu로 약속기호가 정해져 벌써 60년 가까이 알려져 있으니 이를 따르는 것이 좋을 듯 하다. 물론 eo도 /ㅓ/ 발음을 정확하게 표현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o는 /ㅗ/, u는 /ㅜ/를 표현하는데 주를 두고 있고, ŏ는 일반인들의 인식이 낮고 인쇄상의 효율성이 떨어지므로 굳이 고집할 근거가 없을 것 같고 eo를 /ㅓ/ 발음으로 약속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사실은 /eo, o, u, ŏ/ 그 어느 그 어느 것도 /ㅓ/ 발음을 정확하게 나타낼 수 없다. (다른 나라에 없는 발음이므로) eu(/ㅡ/)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eu, u, ŭ/ 모두 /ㅡ/를 정확하게 나타내는 것이 아니므로 혼동을 피할 수 있는 eu로 표기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도, 1999년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이 개정되어 이런 문제들을 많이 해결하였다. 모음 앞에서의 /ㄱ, ㄷ, ㅂ, ㅈ/는 각각 /g, d, b, j/로 개정되었다. /ㅓ, ㅡ/는 /eo, eu/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파열음에서 경음이 바뀌지 않은 것은 안타깝다. 많은 사람들이 딸기를 ‘ddalgi’로 쓰고 있는데 말이다.


이 개정안이 실행되는 과정은 매우 험난할 것 같다. 많은 지방 자치 단체들이 이 개정안을 반대하고 나섰다. 지금 까지 써온 로마자 표기를 모두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표지판, 터미널 등 많은 교체비용이 들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더욱 반대가 심한 것은 통신업체들이다. 인터넷상에서 웹사이트 주소는 업체들의 이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개정안이 발표되면서 하루아침에 고생해서 확보해


놓은 웹사이트 주소가 무용지물이 되니 그들의 반대는 심할 수밖에 없다. 또 김치,


          로마자 표기법 개정안 (1999)


자     음































































































한글


로마자


종전


현행



a


a



ŏ


eo



o


o



u


u



ŭ


eu



i


i



ae


ae



e


e



oe


oe



wi


wi



ya


ya




yeo



yo


yo



yu


yu



yae


yae



ye


ye



wa


wa



wo


wo



wae


wae



we


we



ŭi


ui


        모      음























































































한글


로마자


종전


현행



k/g


g/k



kk


kk



k’


k



t/d


d/t



tt


tt



t’


t



p/b


b/p



pp


pp



p’


p



ch


j



tch


jj



ch’


ch



s


s



ss


ss



h


h



zero/ng


zero/ng



n


n



m


m



r/l


r/l


     (※ 자음에서 ‘ / ’ 앞은 모음 앞일 때, ‘ / ’ 뒤는 그밖에 경우)




불고기, 갈비 등 우리 나라의 전통 음식 이름도 수출과 관련해 혼란에 빠졌다. 김치의 경우, 지금까지 kimchi라는 이름으로 수출해 왔는데, 개정안에 따라 gimchi로


바뀌면 수출에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원칙대로라면 김치, 부산, 김포공항 등, 모두 바꿔야 하지만 거센 반발에 주춤하고 있는 상황이다. 얼마 전(2000년) 종로3가에서 안내판을 새로 가는 공사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새 로마자 표기법 때문에 바꾸나 했더니 로마자 표기가 종전과 다름없는 Chongno- sam(3)-ga였다. Jongno-sam(3)-ga를 기대했던 나는 큰 실망을 하고 말았다. 어렵더라도 국립 국어 연구원에서 큰 마음 먹고 개정한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따라주어야 한다. 물론 당장 교체 비용과 손실이 예상되나 잘못된 것은 고쳐져야 할 것이 아닌가? 중국의 수도 Beijing도 과거에는 Peijing이였다고 한다. 어차피 우리말을 로마자로 완벽하게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최대한 현실 생활에 알맞게 표기법을 제정해야 할 것이고, 이런 측면에서 이번 개정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정부는 이번 로마자 표기법을 널리 시행해서 더 이상 언어 생활에 혼란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