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연못’을 읽고…

 ‘황금 연못’은 5월 중순, 메인주의 한 피서용 별장에 노부부가 도착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어 9월 중순에 별장을 떠나면서 이야기가 끝나는 동안, ‘황금 연못’ 별장에 지내며 거실에서 일어난 일들을 나타낸 희곡이다. 이 노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노년기의 심리를 에릭슨의 심리 사회적 발달 단계에 기초하여 풀어보도록 한다.




 에릭슨 정성설의 가장 마지막 단계인 ‘노년기’에 들어서면 자아통합과 절망의 갈등이 일어나고 이를 극복함으로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지혜’라는 미덕이다. ‘노년기’ 이전의 7가지 단계에서 획득한 미덕 ( 희망, 의지, 목적, 유능감, 충직성, 사랑, 배려 ) 이 8번째 단계인 ‘노년기’에 들어서 ‘자아통합’이라는 방법을 통해 ‘죽음’이라는 절망을 넘어서 인간의 최종 미덕인 ‘지혜’로 거듭나게 된다. 따라서 미덕들이 절망과 갈등하면서 통합되는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노년기의 심리를 알아보자.




 ‘노만’은 올해 황금 연못에서 80세 생일을 맞는 전직 교수이다. 그는 독설과 야구를 좋아하고 부인인 ‘에셀’을 사랑한다. 그러나 이미 늙어버린 자신의 노년기를 매우 증오하고 있다. 그의 노년에 대한 증오는 고약한 농담과 삐딱한 태도로 나타나 주위 사람을 괴롭힌다. 그는 이 ‘황금 연못’에 처음 온 날부터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어떻게 죽으면 좋을까, 내가 죽고 나면 어떻게 될까, 내 생에 마지막 피서라는 둥, 꼭 죽음을 바로 코앞에 둔 사람처럼 이야기한다. 이런 노만을 보고 부인 ‘에셀’은 불안을 느낀다. 그러나 노만은 그것을 즐기기라도 하는 듯이 계속 그런 이야기를 한다. 노만은 그런 노년기에 대한 증오 ― ‘절망’ ― 을 여러 가지로 해결해보려 애쓴다.




 노만의 부인 ‘에셀’은 원기 왕성한 69세 할머니이다. 에셀은 노만과는 달리, 노년기는 아직 오지 않았고 자기는 중년기의 끝자락에 와있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노만과 같은 절망을 느끼지 않고 활기차게 살고 있다. 딸기를 따고, 땔감을 구해오고, 맛있는 음식을 하고… 젊게 살려는 예쁘장한 할머니이다.




 1막 1장에서 노만은 전화가 잘 되는지 확인해보기 위해서. 전화 교환수에게 전화를 해달라고 부탁을 한다. 전화는 다른 세상과 연결되는 통로로 이 같은 행동은 황금 연못의 이 별장이 고립 ( 성인기 발달 과제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노만의 욕구 일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찰리가 올 때 마다 신문을 받아서 야구 이야기를 하며 세상과 접촉을 시도하는 것 또한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1막 2장에서 노만은 신문의 구인란을 열심히 살펴본다. 에셀이 듣든 말든, 혼자 중얼거리며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죽음에 맞서 어떤 일을 함으로써 절망을 이겨보려는 것이다. 그냥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죽음을 맞이할 수는 없다는, 자신의 역할을 찾는 시도이다. 이는 ‘청소년기’의 발달 과제인 ‘정체성과 역할 혼미의 갈등’을 해결해서 ‘충직성’을 회복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또, 노만은 에셀의 말대로 딸기를 따러가지만 빈 통을 가지고 돌아온다. 2장의 끝에서 그 이유를 이야기하는데,




 노만 : 딸기밭 옆까지 갔지만 옛길이 어디 있는지 생각나지 않았어… 어찌나 무서운지 견딜 수가 없었어. 그래서 막 뛰어 돌아온 거야, 당신한테, 당신의 예쁘장한 얼굴을 볼 수 있는 안전한 곳으로 말이야.




 노만은 늙어서 예전에 하던 일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열등감( 학령기 발달 과제 )에 빠져서 절망한다. 그래서 이를 이기기 위해 에셀이 있는 집으로 뛰어 돌아온다. 친밀하고 안심할 수 있는 공간, 즉 유아기 발달 과제인 신뢰성 있는 공간으로 가면된다는 ‘희망’을 갖고 집으로 돌아 온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에셀과의 친밀감 ( 성인기 발달 과제 )과 자신이 고립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 비로소 안심한다.




 1막 1장과 2장에서 노만은 문을 두들기는 사람이 에셀인줄 모르고 에셀을 향해 손님이 왔다고 이야기한다. 이 단순히 늙어서 그렇다고 보기보다는 노만과 에셀의 관계도 어느 정도의 단절이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1막 3장에서는 빌와의 대화에서




 노만 : 그래. 대화 자체가 울고 싶을 정도로 지루해서 말이야, 무심코 재미있는 일을 찾게 돼. 자기가 입을 열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에 말이야.


 노만 : 에셀과 얘기할 때엔 그렇지 않아. 예쁘지, 그 할망구?


 노만 : 오랫동안 사귀어 왔지만, 아직도 그 할망구가 예뻐 보인단 말야…




 자신이 다른 사람과의 대화가 단절 되어 있음을 이야기하면서, 에셀은 예외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과는 고립되어 있지만 에셀 만큼은 ‘친밀감’이 있다는 것이다. 성인기 덕성인 ‘사랑’을 여기서 확인 할 수 있다.




 2막 1장에서 빌리와 같이 낚시도 하면서 불어도 가르쳐준다. 이는 아직도 내가 가르칠 것이 있다는 것, 즉 자신의 생산성 ( 중년기 발달 과제 )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행동이다.




 1막 3장과 2막 1장을 비교해보면 노만과 첼시의 부녀 관계가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1막 3장에서는 노만과 첼시의 관계가 부녀 관계라고 보기 어색할 만큼 껄끄럽다. 에셀과는 정말 친밀하게 지내지만 노만과는 굉장히 먼 거리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2막 1장에서는 사뭇 관계가 새로워진다. 첼시는 아버지와 적극적인 대화로 이 거리감을 해소하려고 한다. 이는 첼시의 엘렉트라 콤플렉스가 빌과 결혼함으로써 해결된 결과이다.




 노만이 첼시에 대한 시선도 변화한다. 1막 3장에서 첼시가 황금 연못을 처음 방문할 때만 해도 뚱뚱한 꼬마라고 인식을 했지만 빌과 섹스 이야기를 하면서 비로써 성인으로 인정을 한다. 처음에는 의도적으로 빌 얘기에 딴소리를 하지만 결국 딸과의 섹스를 허락하면서 딸을 인정한다.




 이렇게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인 결과, 2막 2장에서




 에셀 : 난 죽음을 보고, 손으로 만지고, 두려워했어요… 그렇지만 정말로 피부로 느낀 건 오늘이 처음이에요… 그다지 싫지는 않았어요. 마음이 진정되는 듯한, 그다지 징그럽지도 않고 나쁠 것도 없을 듯해요.


 …


 노만 : 내년에 읽을 거야.




 노만과 에셀이 ‘절망’을 극복하고 ‘자아 통합’을 통해 ‘지혜’를 갖추었음을 알 수 있다. 에셀은 추상적인 개념이었던 ‘죽음’이 구체적으로 현실화 되자, 당황하지만, 이를 인정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고, 노만은 계속 하던 죽음 이야기(노령기의 불만 토로)를 그치고 내년까지 살아서 다시 이 ‘황금 연못’에 오겠다는 삶에 대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