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이 오면




심   훈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을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 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이 2연 밖에 안 되는 심훈의 시를 나는 가장 좋아한다. 물론 이 시 말고도 아름다운 시, 감동적인 시들이 많지만 처음 읽는 순간, 가슴속에 절절히 스며드는 시는 이 시밖에는 없었다. 분량도 짧지만 내용도 간단하다. 필자는 ‘그 날’이 오기를 소원한다. 그러나 그냥 소원하는 정도가 아니라 말 그대로 ‘죽도록’ 바라고 있다. ‘그 날’이 오기만 한다면 필자는 얼마든지 죽어도 좋다. 종로의 인경을 머리가 깨지도록 들이받아 울려도, 가죽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도, ‘그 날’. ‘그 날’이 오기만 하량이면 기뻐서, 여한 없이 눈을 감겠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 날’에 대한 염원이 너무나도 간절해서, 치열하다 못해 전율을 느끼게 해준다. 일신의 생사는 돌보지 않는 염원… 이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벅찬 감동을 느끼도록 만든다. 소외되고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일신의 희생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모습… 나는 이 시를 읽으면서 전태일이 생각났다. 필자의 ‘그 날’은 조국 광복이었겠지만, 전태일의 ‘그 날’은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의, 우리 겨레의 ‘그 날’은 아마도 조국통일의 ‘그 날’일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문제들은 모두 남북분단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반세기 동안, 금수강산이 허리가 잘린 채로 우리 민족이 얼마나 신음하여 왔는가? 통일의 ‘그 날’을 위해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