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채롭다. 시선이, 구성이, 흐름이…
- 어린 새
- 아직 한방울의 비도 바람 사이로 튕겨져나오지 않았다.
-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의 형상이 너무 생생해, 끝없이 쏟아져나오는 반투명한 창자들을 뱃속에 집어넣다 말고 은숙 누나는 강당 밖으로 뛰어나가 토하곤 했다.
- 내가 뭘 했다고 죽어. 여기서 잔일 거든 거 밖에 없는데.
- 마지막으로 정대를 본 건 동네 사람이 아니라 너였다. 모습만 본 게 아니라, 옆구리에 총을 맞는 것까지 봤다.
- 용서하지 않을 거다.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
- 검은 숨
-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총한 총알을 생각해.
처음엔 차디찬 몽둥이 같았던 그것,
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어리가 된 그것,
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놓은, 내 모든 따뜻한 피를 흘러나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
그걸 쏘아보낸 총구를 생각해.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 그렇게 썩고 타들어 갔다…
-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 일곱개의 뺨
-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 쇠와 피
-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 우린 쏠 수 없는 총을 나눠 가진 아이들이었던 겁니다.
- 그, 그러지 마요. 우, 우리는… 주, 죽을 가, 각오를 했었잖아요.
- 꼭 죽이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어, 형.
언제가 됐든 내가 죽을 땐, 그 사람들까지 꼭 데리고 갈 생각이었어.
그런데 이젠 그런 생각도 들지 않아. 지쳤어.
우리는 총을 들었지, 그렇지?
그게 우릴 지켜줄 줄 알았지.
하지만 우린 그걸 쏘지도 못했어. - 날마다 이손의 흉터를 들여다봅니다. 뼈가 드러났던 이 자리, 날마다 희끗한 진물을 뱉으며 썩어들어갔던 자리를 쓸어봅니다. … 내가 밤낮 없이 짊어지고 있는 더러운 죽음의 기억이, 진짜 죽음을 만나 깨끗이 나를 놓아주기를 기다립니다.
- 양심.
- 밤의 눈동자
- 서서히 죽이는 것들. 방사능, 첨가물, 독성 물질들, 화학 비료들, 토목 사업들
- 내가 그들의 죄를 사한 것같이 아버지가 내 죄를 사할 거라니.
난 아무것도 사하지 않고 사함 받지 않아. - 당신은 하루에 열다섯시간 일했고 한달에 이틀 쉬었다. 봉급은 남자 공원의 절반이었다. 잔업수당은 없었다.
- 기억해달라고 윤은 말했다. 직면하고 증언해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 이년 동안 그 하혈이 계속되었다고, 혈전이 나팔관을 막아 영구히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 꽃 핀 쪽으로
-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 눈 덮인 램프
- 예식장의 샹들리에는 화려했다. 사람들은 화사하고 태연하고 낯설어 보였다. 믿을 수 없었다. 사람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데.
- 그 경험은 방사는 피폭과 비슷해요,라고 고문 생존자가 말하는 인터뷰를 읽었다. … 피폭된 자가 죽는다 해도, 몸을 태워 뼈만 남긴다 해도 그 물질이 사라지지 않는다.
- 아무도 내 동생을 더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써야 합니다.
26년을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