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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철학자 김용석과 동양 철학자 이승환의 대담을 옮긴 책이다.
군대 갈 때 처음 읽고 가물가물하길래 다시 읽었는데, 그 전만큼 재밌지는 않더라…^_^;;

몇몇 인상 깊었던 부분을 옮기자면,




이승환: ’21세기는 지식, 정보, 문화가 생산의 요소로 새롭게 부각되는 문화 산업의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과학, 기술만 가지고 경제를 활성화하기는 힘들어집니다. 내용물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내용물은 과학, 기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문화와 예술, 그리고 인문학적 상상력에서 나옵니다.’

이승환: ‘전근대의 폐해를 청산하는 일과 더불어 근대성의 폐해를 극복하는 일, 이 두 가지가 함께 필요합니다.’

김용석: 서양 철학의 특징 – 앎에 대한 사랑, 형이상학적 상상력과 과학의 연계성, 패러독스

김용석: ‘궁극적으로 객관성을 보장하는 것은 도출되는 명제 자체가 아니라, 객관적이고자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행위 자체입니다.’

김용석: 저에게 국가의 특징은 ‘집단적 이기주의가 허용되는 최소 단위’라는 데 있어요.

이승환: 저는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기억’이라고 봅니다.

이승환: 지금 자유주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반화된 인간형은 이러한 짐승 같은 존재들입니다. 예의도 없고 염치도 없고 연민이나 자비심도 없이, 오직 ‘내 몫’만 따지는 탐욕스런 돼지들이지요. ‘권리의 주체’라고 말은 근사하게 하지만, 책임도 없고 의무도 모른 채 오직 권리만 외치는 권리광들의 집합소지요.

김용석: 지성인이 자신의 일거리와 권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자꾸 위기론을 이야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이승환: 지금 우리나라 태극기를 보면 음과 양이 위와 아래로 나뉘어 있죠. 잘못된 태극입니다. 원래의 태극을 보면 위아래가 아니라 좌우로 나위어 있어요. 상하가 아니라 좌우에요. 음과 양은 모든 존재물들이 존재하기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되는 두 가지 평등한 원리일 따름이에요. ~ ‘위계적 이분법’은 플라통 이후 기독교를 거치면서 서양에서 주류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우열을 따지는 배타적 이분법이죠. 근대적 사유의 극복을 위해서는 이러한 위계적이고 배타적인 이분법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재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김용석: 아리스토텔레스는 신은 부종의 쾌락을 즐기는 존재라고 했어요. 신은 가만히 있어도 즐거운 거고, 인간은 계속 움직여야 즐거워진다는 거죠.

이승환: 자유는 소중하지만 자유주의는 위험합니다. 인간과 인간의 분리라는 관계에서 출발하는 근대적 사유는 인간을 물신화로 이끌어가고, 인간과 인간을 분리시키며, 인간과 자연을 이분법으로 나누고, 생태계를 파멸로 몰아갑니다.

김용석: 현대에는 ‘유도된 욕구’가 너무 많다는 거죠.

이승환: ‘진화론적 경제학’이라고 그래요. 혹은 ‘자생적 질서’라고도 부르고요. 양육강식, 자연도태라는 사회진화론적 생각을 그럴싸한 경제학 용어로 포장해 놓은 거죠.





여기까지…헥헥…
조금만 쓰려고 시작한 거였는데….@_@;;;